흑두루미 날던 순천만 '국민정원'으로 탈바꿈

2023-06-28 11:14:49 게재

10년만에 돌아온 정원박람회 인기몰이

시민이 지킨 습지, 지역가치 높인 자원

"우와~ 시야가 탁 트이네. 가슴이 뻥 뚫리고. 새벽 3시부터 채비를 했는데 혼자 사는 게 오늘처럼 좋을 수가 없어요."

10년만에 돌아온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개장 84일만에 관람객 500만명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시민들이 지킨 습지가 도시 가치와 시민들 자긍심을 높이는 대표 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


전남 순천시 오천동 순천만국가정원. 동문을 들어서자 순천시를 가로지르는 동천과 6개 산을 형상화한 호수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입장권을 대신한 주민등록증으로 입구를 통과한 70대 여성이 탄성을 내지른다. 경기도 수원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는 그는 "인터넷을 검색해 찾은 자료에 버스 운전기사 조언을 더해 꼭 가봐야 할 곳을 정했다"며 "다 둘러보지 못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넓어진 정원, 10가지 큰 변화 = 28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10년만에 돌아온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첫 박람회를 뛰어넘는 '청출어람' 효자상품이 됐다. 2013년 440만명으로 마감했는데 올해는 84일만에 500만명을 돌파했다. 흑두루미 날던 습지가 전 국민 휴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호수정원을 비롯해 한국 중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등 국가별 정원을 기본으로 10가지 큰 변화가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더한다. 영원한 자연산수를 의미하는 '삼산이수(三山二水)' 순천을 표현한 국가정원식물원과 시크릿가든(secret garden)'이 하나다. 각종 식물과 빙하정원 햇빛정원 등을 만날 수 있는 미래정원이다. 동문 출입구와 가까워 정원여행 출발점으로 삼기에 제격이다.

키즈가든(kids garden)과 노을정원은 세대와 세대 연결, 성장부터 황혼까지를 의미한다. 관람객들은 너른 잔디밭 위 키큰 나무 그늘에 누워, 정원 곳곳에 자리잡은 의자와 원두막에 앉아 '순천하고' 또 '정원에 산다'. 아이들 역시 식물원 한켠에서 책을 읽거나 지도와 자원봉사자에 의존해 정원 탐험을 즐긴다.

도심권역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동천에 띄운 '물 위의 정원'은 지난 3월 31일 화려한 개막식이 열렸던 곳이다. 그 배후에 저류지를 시민들 쉼과 사색 공간으로 바꾼 오천그린광장과 아스팔트 위에 잔디길을 조성해 국가정원과 연결한 그린아일랜드(green island)가 있다. 국가정원 바깥에서 접근할 수 있지만 남문에서도 가깝다. 밖으로 나갈 때 도장을 찍으면 한차례 재입장이 가능하다.

도심부터 순천만습지까지 주변 농경지는 대규모 경관정원으로 꾸몄다. 정원산업 향산업 등 6차 산업 육성과 맞닿은 공간이다. 국가정원과 도심을 잇는 동천 물길을 복원한 국가정원 뱃길은 천변 경관과 낭만을 담은 새로운 이동수단이다.

박람회장 전체가 밤이면 야간경관 옷을 입는다. 60만평 정원에서의 특별한 하룻밤을 선물하는 가든스테이(garden stay), 맨발로 지구와 접촉하며 건강을 챙기도록 8곳에 조성한 어싱(earthing 接地)길까지 즐기자면 한나절이 부족하다.

◆무진교 건너 3㎞ 갈대밭 산책길 =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Mujin 10㎞'라는 이정비(里程碑)를 보았다."

국가정원 동원과 서원을 둘러본 관람객들은 꿈의 다리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정원역으로 향한다. 하루 17회 운영하는 스카이큐브를 타고 순천만역에 내려서면 무진교까지 1.3㎞를 잇는 갈대열차가 기다리고 있다. '무진기행'의 한 구절이 들려올 즈음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꼽히는 순천만과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진다.

무진교를 건너 용산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갈대숲 탐방로는 그 자체가 쉼이자 치유다. 청보리처럼 푸른 갈대부터 보랏빛 꽃을 피우기 시작한 갈대가 끊기듯 이어지는 탐방로와 조화를 이룬다. 가을이면 햇살과 어우러져 황금들녘처럼 빛나는 그 갈대숲이다. 갯벌에 숨구멍을 만드는 칠게 농게 짱뚱어를 찾는 관람객들 눈길이 분주하고 예전에 어민들이 사용했던 배를 본뜬 '추억의 배'나 갈대지붕 아래서 지친 다리를 쉬어간다.

경남 하동에서 효나들이를 나온 주민들도 갈대를 최고의 추억으로 꼽았다. 정우원 자원봉사협의회장은 "인근 명소 관광까지 포함시켜 계획을 짜고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을 1대 1로 지원한다"며 "갈대는 어르신들 삶에 늘 있던 풍경인데 농번기라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이번에 제대로 눈에 담았다"고 말했다.

순천만의 또다른 상징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288호인 흑두루미다. 매년 러시아 아무르강과 바이칼호수부터 날아와 겨울을 난다. 개발논리가 우세했던 1990년대 자칫 흑두루미와 순천만 습지를 잃을 뻔도 했다. 홍수가 잦다는 이유로 동천 하류 갯벌을 정비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반대, 충돌까지 발생했다.

시민들은 보존을 택했고 2003년 습지보호구역 지정, 2006년 람사르 습지 등록,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박기영 순천대 교수는 "정책적 방침이 국가정원이라는 완충지역을 만들어냈고 생태가 도시의 핵심 가치로 자리잡았다"며 "시민들 지지가 높고 정원과 생태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순천만과 정원박람회는 주민들 자긍심을 높이고 지역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자산이다. 서울 등 많은 지자체가 정원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정원박람회를 계기로 순천이 주목받으면서 소비군이 확산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됐다"며 "대통령 방문으로 지역 현안사업 1조원 이상 효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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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국진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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