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할매들 힙합댄서로 변신

2023-07-11 11:30:20 게재

80년 숨겨둔 끼 발산

"랩으로 손주와 친해져"

"고추 따던 할매들 땅콩 캐던 할매들, 우리도 랩을 해 계속해서 뱉을래. 소밥 주다 개밥 줘. 개밥 주다 소밥 줘. 그래도 난 연습해 랩을 매일 연습해."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친 경북 칠곡군 할머니들이 대통령의 글꼴로 알려진 칠곡할매글꼴 제작에 이어 이번에는 '래퍼'로 변신, 힙합공연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경북 칠곡군은 지난 9일 문화체육관광부 법정문화도시 '우리 더해야지' 사업으로 북삼읍 어로1리 마을 공연장에서 '1080 힙합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날 축제무대에는 10대 청소년과 함께 평균 연령 77세인 보람할매연극단 소속 어로1리 할머니 9명이 힙합 복장을 하고 무대를 종횡무진 했다.

87세의 장병학 할머니는 홀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고, 78세의 최순자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와 함께 무대를 펄쩍펄쩍 뛰며 숨겨진 끼를 마음껏 발산해 200여명의 관객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어로1리 할머니들은 마음만은 젊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젊은층 전유물인 랩에 도전하기로 하고 지난해 9월부터 연습에 매진했다. 할머니들의 스승은 대구 출신 힙합 뮤지션인 래퍼 탐쓴(30)과 성인문해강사로 할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던 황인정(49)씨가 맡았다.

래퍼 탐쓴은 한달에 다섯 차례 정도 마을회관을 찾아 할머니들에게 랩을 가르쳤고, 할머니들이 작성한 가사를 라임이 있는 랩 형태로 바꿔주었다. 또 자신이 부른 랩을 녹음해 할머니들에게 전해주며 연습을 독려하는 등 할머니 제자 양성에 정성을 기울였다. 황인정씨도 자녀와 함께 랩과 힙합을 배워 연습하며 할머니들을 지도했다.

할머니들은 이웃집 할아버지로부터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10개월 걸친 할머니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랩 4곡을 완성하고 무대에 섰다. 할머니들의 일상과 삶은 물론 마을을 소개하고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곡들이다.

앞으로 할머니들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은 물론 각종 행사에서 랩과 힙합 춤 실력을 뽐내며 세대간 소통을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에 나설 계획이다.

정송자(78) 할머니는 "며느리도 못 하는 랩을 내가 정말로 할 수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손주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고 말했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정규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한 마지막 세대 할머니들이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 서고 있다"며 "디지털 문해교육과 문화도시를 통한 인문정신 확산은 물론 차별화된 문화 콘텐츠 생산을 위해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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