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높아진 서민금융, 갈 곳 잃은 금융취약층 | ③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
"불법사금융시장 규모 약 20조 … 저신용자 120만명 이용 추산"
최고금리 탄력 운영 이외에는 불법사금용 확대 못 막아 … "취약계층이 '숨쉴 수 있는 공간' 갖도록 전문가 상담과 채무조정 필요"
"국내 불법사금융시장 규모는 약 20조원에 달합니다. 금융당국이 밝힌 자료 등을 토대로 약 120만명이 불법사금융을 이용했고 1인당 이용금액이 1732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대략적인 시장 규모 추산이 가능합니다."
안용섭 서민금융연구원장은 12일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불법사금융시장 이용 잔액이 대부업 잔액(지난해말 기준 15조8678억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진단했다.
2017년 설립된 서민금융연구원은 서민금융 관련 법제와 행정 등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금융소외자 문제'에 초점을 맞춰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민간 연구기관이다.
안 원장은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서 최근 5년간 저신용자(신용등급 6등급 이하) 중 제도권 금융에서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한 비율이 평균 9.5%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매년 진행해 온 실태조사결과를 토대로 산출한 것이다. 2018년 2월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낮아졌을 때 불법사금융 이동 비율은 16%로 크게 높아졌고, 2019년 10.2%, 2020년 7.7%로 나타났다. 2021년 7월 다시 한번 법정 최고금리가 24%에서 20%로 낮아지면서 2021년 5.8%였던 이동 비율은 지난해 7.8%로 상승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매년 '저신용자(대부업·불법사금융 이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을 통해 대부시장과 불법사금융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왔다.
안 원장은 "대부업체 이용자가 2015년말 267만9000명으로 최고를 기록한 이후 지난해 6월말 106만4000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며 "급격한 변화를 보인 시점은 법정 최고금리가 두 차례 인하된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5년간 대부업자의 영업환경과 저신용자의 대출 환경이 모두 악화됐다"며 "저신용자들에게 자금을 공급하는 최후 보루로서 대부업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현재 연 20% 이하로 묶여있는 법정 최고금리 상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금융소외 해소 위해 대부업 활성화 필요" = 저신용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으로는 먼저 대부업 활성화를 꼽았다. 대부업체들이 조달 금리 낮춰야 서민금융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차입 확대 △사채 발행 허용 △세법상 손비인정범위 확대 등을 선결 과제로 제시했다.
안 원장은 "특히 금융환경 변화를 고려해 최고금리 규제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며 "시장금리에 따라 금리 상한이 바뀌는 '시장연동형 금리상한방식' 도입을 검토할 때"라고 말했다.
시장연동형 금리상한방식은 저금리 시기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낮추고 고금리 시기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올리는 것으로, 지금과 같이 법정 최고금리 상한을 고정시켜 놓는 방식과는 다르다.
그는 "은행 등 예금수취 금융회사와 대부업 등 비수신 금융회사 간 최고금리 규제를 차별화할 필요도 있다"며 "단기·소액대출의 경우 금리 상한을 더 높게 해서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이 불법사금융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소액대출의 경우 연 27.9%까지 상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미국은 주별로 금리 상한이 다르지만 대체로 단기·소액대출에 한해서는 금리 상한을 다른 대출상품보다 높게 설정하고 있다.
안 원장은 "정책의 예측 가능성도 높여야 한다"며 "법정 최고금리 인하 등에 대한 규제 속도와 내용 등을 상당기간 예고해서 시장에서 준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금융당국의 제도 개선 없이는 저신용자의 자금조달 상황이 나아질 수 없다"며 "최고금리의 탄력 운영 이외에는 불법사금용 확대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민금융정책, 기본 통계 부재" =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달 7일 기자간담회에서 서민금융을 1조원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재기지원을 위한 복합상담, 선제적 채무조정을 통한 금융취약계층 지원 방침도 강조했다. 실현될 경우 정책서민금융 공급규모는 현재 10조원에서 11조원으로 커진다.
하지만 안 원장은 "정확한 서민금융정책 관련 기본 통계의 부재로 정책금융을 얼마나 더 늘려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부의 서민금융지원이 구체적으로 신용등급 구간별로 어떻게 구체적으로 지원되는지 흐름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실제 극저신용자에 대한 대책이 미미하기 때문에 공개할 자신감이 없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이 매년 포용금융 리포트를 작성해 정책금융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 것처럼, 서민금융진흥원 등 정책자금 지원이 보다 더 세밀하게 분석되도록 통계자료를 공개해 다양한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원장은 또 "최저신용자 특례보증 확대 공급 등 위기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새로운 서민·취약계층 지원책이 즉시 전파되도록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 등을 활용해 즉각적인 피드백이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계층 재기 지원 대책 병행해야" =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출시한 소액 생계비 대출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의 출연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올해 소액 생계비 대출 공급규모는 1500억원으로 은행권과 캠코의 기부금을 통해 마련됐다.
금융위원회는 내년 소액 생계비 대출을 위해 1500억원의 예산을 신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지원 없으면 내년 소액 생계비 대출 규모는 은행권이 기부한 500억원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안 원장은 "은행권의 기부 확대는 상생과 위기 극복 차원에서 바람직하다"며 "민간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서민금융도 금융의 틀에 있기에 저신용자에게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줘야 한다"며 "복지정책과는 달라야하고 금융권에만 의존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민금융재원의 신규 공급과 함께 기존 취약계층의 재기를 지원하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이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채무자보호법이 조속히 통과돼 사전 채무조정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안'(일명 채무자보호법)은 개인채무조정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법안은 채권금융회사를 '개인금융채권을 보유한 사실상 모든 금융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 서민금융법이 신용회복위원회와 신용회복지원협약을 체결한 곳만 '채권금융회사'로 보는 것과 차이가 있다. 금융회사와 개인금융채무자 간 직접 채무조정을 규정하고 있으며, 연체한 채무자가 금융회사 등에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채무조정 방법은 원리금 감면과 이자율 조정 등 서민금융법과 내용이 유사하지만 신용회복위원회가 진행할 수 없는 대환(새로운 대출을 통한 기존 채무의 변제)이 추가됐다.
그는 "2021년 영국은 어려운 시기에 취약계층들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로 '브리딩 스페이스 제도' (breathing space scheme)를 마련, 전문가에 의한 상담과 정신 건강까지 고려해 채무상환 등을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다"며 "국내에도 이 같은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서민금융연구원은 공급자 관점보다는 수요자 관점에서 금융의 접근성과 가용성, 그리고 취약성이 보완되도록 눈을 크게 뜨고 현행 제도와 제도의 실행과정을 살펴볼 것"이라며 "서민금융 연구를 위해 인적, 물적 기반을 확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기능별(저축 투자 신용 지급결제 등), 업무별(포용금융, 마이크로파이낸스, 임팩트 투자 등)로 해야 할 연구분야를 설정하고 연구역량을 향상시키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