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길
모든 사고는 오직 모를 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 시행 후 몇건의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대형 건설사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대응에 숭산 스님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정부 중앙부처의 여러 공직자들의 의견을 모아 내린 결정일 것이다. 그런데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과는 동떨어진, 오히려 중대재해 증가에 기여하게 될 낡은 대응에 숨이 턱 막혔다.
대형건설사들의 중대재해 동향만 살폈더라도 그렇게 대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국내 도급순위 10위 이내 대형건설사의 사고사망율은 건설업 전체 평균의 1/3 이하로 서유럽 선진국 수준에 이미 진입했다.
이들 건설사에서 최근 20년간 발생한 800~900여건의 중대재해는 해마다 들쭉날쭉해서 개별업체의 경향성은 전혀 알 수 없고, 10개 건설사의 총량 수준에서 전체의 추세 정도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들 건설사 중 안전면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내외적으로 인정하는 건설사의 경우도 1건도 발생되지 않은 해가 있는 반면, 어떤 해는 10건 이상 발생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런 조치는 대형 건설사들은 그저 돌아가며 당하게 될 일이다. 사고는 계획생산이 가능한 제품이 아니다. 사고의 몰림과 여백은 아직 신의 영역이다.
규제의 오남용
대형 공사현장이 더 안전한 상태로 가려면 안전규칙을 넘어 안전 확보가 시공으로 이식되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의 그런 대응은 의도와는 달리 해당 기업은 물론, 전체 대기업 안전의 발전을 저지함과 동시에 심각한 공적자원 낭비다.
산업안전감독은 전체 생산현장의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규범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안전규칙 조치도 모르거나, 비용 때문에 외면하는 기업군에 사용돼야 하는 중요한 공적자원이다.
대기업의 경우 적어도 필요한 안전규칙 준수에 비용을 아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사고예방을 위한 실용 지식면에서 정부의 감독인력보다 훨씬 우수하다. 수세에 몰린 기업은 사고예방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문자에 입각한 '탈탈 털기식' 적발에 이의제기도 못하고 그저 당하게 된다.
실제 한손으로 들 수 있고 구르지도 않을 벽에 걸쳐 놓은 파이프 서포트에 안전규칙 제3조의 전도방지 위반을 적용하고, 그 자재 수만큼을 위반건수로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기업에 대한 특별감독 결과, 수천건의 위반은 그런 의미다.
일반 시민들이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주무 장관은 그런 실상을 알고는 있을까.
또 그런 선정적인 보도를 빌미로 국회의원들은 국정감사장에서 기업대표와 장관을 호통친다. 그리고 무지의 배설물을 돌아가며 집어삼키는 이런 악순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사고는 예측불가능하다
사고는 예측불가다. 세월호 참사를 보자. 배경요인들은 논외로 하더라도 화물 과적, 미고정, 선장의 태만, 평형수 부족과 스테빌라이저 고장, 조타실 일시 정전, 급류 하물며 항로 결정에 영향을 미친 인천항의 안개 등등 세월호 사고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일어난 여러 요인들의 예측할 수 없는 조합들의 결과다
단순해 보이는 사고들 역시 마찬가지다. 사고의 예측불가능성은 세계적인 안전분야 석학들의 공통된 견해다.
예측된 사고는 허용됐거나, 고의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해결 능력 내의 위험은 위험으로 만 인식되면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그래서 발생된 모든 사고에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에 해당하는 위험은 위험성평가에서 빠져있기 마련이다. 사고를 확인한 후에 사고의 위험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다는 생각은 대개 '후견확증편향'(Hindsight Bias)이라는 착시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퀴즈의 정답을 들은 후의 반응과 같다.
이 편향은 전문가도 순간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본성적 오류다. 이 때문에 미국 에너지성 사고조사 지침은 5Why(왜)라는, 조사자가 후견확증편향에 빠져드는 것을 막기 위한 5번에 걸친 절차적 강제 단계를 두고 있다.
사고가 발생될 모든 위험을 사전에 알 수 있다면 중대재해 발생 전에 감독을 다녀온 자를 처벌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산재예방에 대해 행정 공무원이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어도 될 것이다. 그러나 큰 수의 법칙이라는 통계의 기본원리를 모를 리는 없을 터인데, 집행 결과를 고민하지 않는 행정은 직무유기 아닌가.
중대재해에 대해 경영책임을 별도의 법으로 추궁하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보여주기 행정은 시스템적인 관점에서 향후 발생될 산재의 배경요인에 해당한다. 중세의 마녀사냥도 같은 맥락의 흑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