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잇단 강력범죄에 정신질환자 대책 준비 중

"단순 격리·수용서 예방·치료·재활로 전환 필요"

2023-08-14 11:17:16 게재

입원율 9.1% 수준, 공공의료기관 전문의 만성 부족 … 위기지원쉼터 3곳 불과, 정신재활시설 제자리걸음

최근 잇달아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범인들이 중증 정신질환 전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이들의 격리와 경찰의 현장 대응력 강화 등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정부대책이 격리·수용보다 예방·치료·재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14일 정신건강전문의와 환자단체 등은 정부가 강제입원 등 환자의 기본권 제한과 함께 정신질환 예방과 치료, 재활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된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강력 범죄를 계기로 정부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도' 도입 검토에 나선데 따른 것이다. 강제입원 도입과 함께 치료와 재활 등을 위한 기반 구축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신장애인가족단체,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9일 국회에서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사법입원제'는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범죄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이들의 입원 여부를 사법기관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7년 개정돼 시행 중인 정신건강복지법 등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는 환자 본인의 판단에 따른 입원 외에도 보호자와 전문의 2인의 소견을 바탕으로 '강제입원' 결정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 법원 등 사법기관이 나서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거나, 일치된 소견이 없을 경우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사법입원제도는 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호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적절한 치료' 절실 = 의료계는 그동안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환자가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경우 꾸준히 치료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할 수 없고, 입원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질환자에 의해 불특정 다수, 무고한 국민이 다치면 당연히 국민적 염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하지만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니까 가두자'로 접근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편견과 비난의 분위기가 형성되면 오히려 환자들은 숨게 되고 더 사고가 발생할 수 있게 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차분하게 원인을 따져보고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을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 분당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 모씨와 지난 5일 대전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피의자는 공통적으로 정신질환 병력이 있지만 치료를 받다가 중단했다.

최씨는 대인기피증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2015~2020년 병원을 다니며 정신과 약을 복용하는 등 치료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씨는 2020년 조현성 인격 장애(분열성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뒤 진료를 거부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도 "특정 집단이 나를 스토킹하며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고 진술했다.

학교에서 교사에게 흉기를 휘두른 피의자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다. 이후 병원측에서 입원 치료를 권유했지만 그는 입원하거나 치료받지 않았다.

정신질환자 강력 범죄는 이전에도 발생했다. 지난 2019년 4월 경남 진주시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방화살인범 안인득은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이웃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아이들과 여성·노인 등 주민 5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1년부터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치료를 받던 안인득은 2016년 7월 이후 스스로 치료를 중단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근처 상가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까지 받았지만 퇴원 후 약을 복용하지 않는 등 치료를 중단한 지 2개월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정신질환자 범죄율, 전체보다 낮아 = 잇따른 범죄 발생에 일각에선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 환자를 격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정신질환자의 경우 범죄율 자체는 일반인보다 높지 않다. 대검찰청의 2017년 범죄분석에 따르면, 전체 인구 범죄율이 3.93%인데 반해 정신질환자 범죄율은 0.136%다.

일단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가 심각한 강력 범죄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이 과장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강력 범죄에서 정신 질환자가 범인인 비율이 2012년 1.99%에서 2021년 2.42%로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가 차원에서 중증 정신질환자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중증 정신질환자 진료환경은 오히려 악화됐다.

2021년 기준 중증 정신질환자는 65만1813명으로 2018년 50만9056명보다 14만여명 늘었다. 그중 조현병 환자는 18만9878명으로 중증 정신질환자의 28% 수준이다. 하지만 국내 중증 정신질환자의 입원율은 낮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국내 정신의료기관에서 진료 받은 중증 정신질환자 중 입원환자는 5만9412명으로 9.1%에 불과하다.

조기 치료와 관리를 담당할 병상 수도 줄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분석에 의하면 국내 정신병원 병상은 2017년 6만7000병상에서 2023년 5만3000병상으로 줄었다. 신체질환이 동반된 정신과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상급종합병원 정신과 병상도 낮은 의료 수가에 따른 만성적자로 10년간 1000병상이 감소했다.

특히 공공의료기관의 전문의 확보율도 위험 수준이다. 국내 5개 국립정신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8월 기준)는 원장을 포함해 총 30명으로 정원(80명)의 37.5%에 불과하다. 서울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는 39명 정원에 13명만 근무 중이고, 정원이 각각 11명인 국립부곡병원과 국립공주병원의 전문의는 각 3명뿐이다. 정원 7명인 국립춘천병원의 경우 한동안 정신건강의학회 전문의가 0명인 상태로 운영되다 그나마 최근 원장이 임명되고 의사 1명이 충원되면서 2명이 됐다. 사정이 나은 국립나주병원도 전문의 수가 9명으로, 정원(12명)에 못 미친다.

전문의 부족은 병원 기능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감사원은 지난 5월 말 국회에 제출한 2022회계연도 국가결산 검사 보고서에서 "국립정신건강센터와 국립춘천병원, 국립공주병원은 의료진 퇴사, 의료진 부족으로 인해 진료 대기시간이 증가해 전반적인 이용자 고객 만족도가 목표치에 미달했다"고 지적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를 포함한 5개 국립정신병원들은 권역별로 국민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 의료기관이다.

◆조현병 입원기간 OECD 여섯 배 = 의료계는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격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치료와 기반 구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 따르면 전세계적인 조현병 유병률은 1%대로 희귀한 질환은 아니다. 발병 초기 3~5년간 집중적인 치료를 받는다면 사회·직업적 기능의 회복 예후도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018년 펴낸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치료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조현병 환자의 평균 병원 재원 기간은 303일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50일)의 여섯 배가 넘는다. 우리 의료체계가 치료보다는 입원·격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회 최혜영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신질환자가 회복을 위해 수시로 방문하는 위기지원쉼터는 전국에 단 3곳뿐이다. 그나마 모두 서울에 설치돼 있다. 위기지원쉼터는 입원할 정도가 아니거나 입원을 꺼리는 정신질환자들이 위험한 상태로 가는 걸 방지하는 시설이지만 정작 접근성은 매우 떨어지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게 재활 및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신재활시설은 지난해 6월 기준 349개였다.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단 한 곳도 늘지 않았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적시적기에 치료를 받으면 공격성과 폭력의 위험이 현저하게 낮아진다"며 "중증정신질환 관련된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해소하고 발병 초기에 즉시 치료를 시작하고 회복과 재활을 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6일 성명서를 내고 "환자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 개선을 통해 적절한 치료와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적절한 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가 증가하고, 편견만 증가하는 악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환자 단체들도 단순히 격리를 위한 '사법입원'이 아닌 국가책임제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와 한국조현병회복협회,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협회는 9일 국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중증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가족에게 이송부터 치료까지 모든 것을 떠넘기지 말고, 선진국처럼 국가가 책임지는 '중증 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 달라"며 "가족이 언제까지나 '욕받이' 역할을 할 수 없다. 정신건강복지를 위한 인프라 투자, 예산 배정 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세풍 박광철 오승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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