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부동산위기, 그림자금융으로 번지나

2023-08-21 10:54:10 게재

헝다 비구이위안 채무불이행 위기, 대형 그림자은행 중즈그룹 자금난 촉발

중국의 경기침체 속에 헝다(에버그란데)에 이어 매출 1위 부동산개발업체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까지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지면서 그동안 중국 부동산산업을 뒷받침해온 그림자금융에까지 위험의 불씨가 번지고 있다.

그림자금융은 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하지만 투자대상의 구조가 복잡해 손익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금융상품 및 금융기관을 말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그림자금융의 규모(FSB 기준)는 2021년 11조4000억달러(약 1경5000조원)로 정부 규제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그림자금융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산관리상품(WMP)이다. 자산관리상품은 은행의 대출자산, 회사채 등을 신탁회사에 넘겨 유동화한 상품을 뜻한다.


중국 그림자금융 부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자산규모는 2008년 이후 급증해 2016년 68.6%까지 상승했으며, 정부가 단속을 강화한 이후에도 2021년 63.4%를 기록했다. 그림자금융에서 자산관리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GDP 대비 54.6%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관리상품은 단기 상품이 주를 이루는데, 그림자금융이 주로 장기 대출에 사용되기 때문에 롤오버(상환연장) 위험을 자주 맞딱뜨려 불안요소가 된다.

중즈 자회사 중롱 '무리한' 부동산 투자

그림자금융이라는 이름처럼 음지에서 중국의 부동산 금융을 지원해왔던 중즈그룹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은 비구이위안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빠졌다는 뉴스가 나온 이후다.

매출 기준 중국 1위 부동산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은 지난 7일 만기가 돌아온 액면가 10억달러 채권 2종의 이자 2250만달러(약 300억원)를 지불하지 못했다. 10일에는 올해 상반기에 최대 76억달러(약 10조1000억원)의 손실을 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공시했다.

2021년부터 경영난을 겪어온 헝다에 이어 또 다른 대형 개발업체인 비구이위안의 자금난은 중국 최대 자산관리회사인 중즈그룹을 직격했다. 12일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에는 중즈그룹의 자회사 중롱국제신탁이 탄소제품 제조업체인 KBC와 나시티 부동산 서비스 등 여러 상장사에 판매한 1억4000만위안(약 257억원) 규모의 자산관리상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롱국제신탁은 대주주인 중즈그룹이 유동성 문제에 직면했다는 보도가 나온 가운데 30개 이상의 자산관리상품에 대한 지급에 실패했다.

중롱국제신탁의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운용자산 6290억위안(약 115조원) 중 11% 정도가 부동산에 투자됐다. 하얼빈에 본사를 둔 중롱국제신탁은 스마오그룹과 수낙 차이나 등 부도난 대형 부동산개발업체의 여러 부동산 프로젝트의 주요 주주이기도 했다.

베이징 소재 투자회사 샹송앤코의 선 멍 이사는 "중롱의 문제는 정부의 부동산 부문에 대한 디레버리징이 계속되면서 비구이위안과 같은 개발업체들이 직면한 자금 경색 심화의 파급 효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가 있는 개발업체에 자금을 제공하는 중롱의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 중국 신탁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투자금과 대출에 의존해 예금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중롱과 같은 신탁사에 자금 경색이 발생하고 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전체 신탁 자산의 약 10%인 3000억달러(약 402조원)가 부동산 부문에 묶여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즈그룹, 정부 규제에도 공격적으로 영업

중국 내 10위권 신탁사인 중롱은 주로 부유한 개인 투자자와 기업의 예금을 모아 주식 채권 및 기타 자산에 투자하는 동시에 기존 은행에 접근할 수 없는 회사에 대출을 제공해왔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중롱은 음지에서 운영되지만 중국 전체 대출의 약 10%를 차지한다.

데이터 제공업체 유즈 트러스트(Use Trust)에 따르면 중롱은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270개 상품, 총 395억위안(약 7조2600억원)의 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중룽과 같은 신탁은 1년 만기에 6% 또는 8%의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데, 이는 시중 은행이 비슷한 상품에 지급하는 금리의 약 2배 수준이다. 중국 주가가 폭락하고 부동산이 최근 2년간 하락세를 보이면서, 분기별 배당금을 지급하는 이러한 고수익 펀드들은 수조위안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중국 차이신글로벌에 따르면 중롱의 대주주 중즈그룹은 1995년 목재사업을 시작한 시에즈쿤이 설립한 회사로, 초반에는 인쇄업으로 큰돈을 벌었다가 부동산 및 금융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힘입어 지난 10년 동안 중국에서 자산관리산업이 급성장했는데 중즈그룹도 그 흐름에 올라타 금융부문을 키웠다.

그러나 2018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무분별한 P2P업계에 대한 정부 단속이 시작되면서 자산관리회사들은 상품발행을 대폭 줄이고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중즈그룹의 자산관리회사들은 이와 반대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지속적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렸다. 최근 몇년 동안 경쟁 신탁사들이 리스크를 줄이는 와중에도 중즈와 그 계열사, 특히 중롱은 문제가 있는 개발업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헝다그룹을 비롯한 회사들의 자산을 사들였다.

중즈그룹은 수조달러의 자산과 수만종의 자산관리상품 관리로, 운영 규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도 불구하고 개별상품에 대한 채무불이행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수년 동안 중즈그룹과 산하 자산관리회사들이 유동성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중즈그룹은 매우 신속하게 시장을 안심시켰다. 회사의 규모가 워낙 큰 데다가 여러 자회사와 상품 간에 내부적으로 자금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중즈그룹의 설명을 믿었다. 하지만 2021년 말 창업자 시에즈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그룹의 미래 궤적이 불확실해졌고 단기적인 운영 리스크가 증폭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서 한때 중즈그룹의 금융상품이 이용했던 수익성 높은 투자기회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수익률은 제로 또는 마이너스로 바뀌었다. 또한 다양한 제품과 자회사 사이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능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모델은 지속 불가능해졌고, 결국 채무불이행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시장 불신 '도미노' 우려

신탁 부문의 문제는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중즈그룹의 규모를 고려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즈 트러스트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까지 약 440억위안(약 8조900억원)에 달하는 106개의 신탁상품이 부도 처리됐다. 부도금액의 74%가 부동산 투자에서 발생했다. 지난해에도 이미 수십억달러의 채무불이행이 있었다.

피치의 크레딧사이트는 "채무불이행은 투자자와 시장 심리를 계속 해칠 수 있다"면서 "대형 신탁 또는 자산관리회사의 무질서한 정리는 단기적인 금융 안정성을 시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신탁업계의 유동성 위기는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 멍 이사는 "중롱 상품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은 자산이 줄어들고, 상장기업은 성장과 투자를 위한 자본이 줄어들 수 있으며, 이미 부채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지방정부는 중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할 때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트리비움 차이나의 애널리스트이자 '빚의 만리장성' 저자인 디니 맥마흔은 중즈그룹 문제가 대형 상업은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지만, 부유한 투자자들이 돈을 빼기 시작하면 다른 자산운용사로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들이 믿음을 잃기 시작하면 갑자기 새로운 자금을 계속 조달하는 것이 더 어려워진다"면서 "그러면 채무불이행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진다"고 밝혔다.

중국 감독당국은 중즈그룹 리스크 조사를 위해 실무 그룹을 구성했다. 당국은 중롱에 유동성 경색에 대처하기 위해 매각할 수 있는 자산과 향후 지불 계획을 보고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장기적인 구조조정을 위해 회계컨설팅회사 KPMG와 계약을 맺었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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