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 칼럼
'서울소멸' 학교에서부터 시작됐다
최근 인터넷을 달군 짧은 영상, 밈(meme)이 있다. 초저출생 문제를 다룬 교육방송(EBS)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 와!"라며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는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이라는 말을 듣고 보인 반응이다.
그 출산율이 올해 2분기 0.70명으로 더 내려갔다. 분기 기준 역대 최저치다. 통상 출산율이 연초에 높고 연말로 갈수록 낮아지는 '상고하저' 추세임을 고려하면 올해 연간 출산율은 0.6명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외국인 전문가는 "그 정도로 낮은 수치의 출산율은 들어본 적이 없다"며 경악하는데 정작 당사국인 우리나라에선 무심하다. '또 그 얘기냐' '그럴 줄 알았다'며 식상해 할 정도다. 대책을 세워야 할 정부와 정치권은 타성에 젖고 국민은 내성이 생긴 느낌이다.
'인구절벽'에 이어 '지방소멸' 위기론만 나도는 줄 알았는데, 어느 새 '서울소멸' '국가소멸'론까지 대두됐다.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학교 통폐합과 폐교문제가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현안으로 등장했다. 2015년 금천구 홍일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올해 광진구 화양초교까지 이미 학교 5곳이 사라졌다.
내년에는 도봉구 도봉고교, 성동구 덕수고교(특성화계열), 성수공고가 문을 닫을 예정이다. 성동구 내 중고교 6곳도 통폐합이나 외곽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 17개 시도 중 꼴찌다. 게다가 지난해 0.59명이었던 것이 올 2분기 0.54명으로 더 내려갔다. 올해 78만6880명인 서울 초중고 학생수는 불과 12년 뒤 2035년에 42만1000명으로 반토막난다.
저출생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는 비단 통폐합 등 '학교위기'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지방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벚꽃 지는 순서'대로 대학 등 각급 학교가 문을 닫으면 학교 주변의 상권 쇠퇴, 지역의 공동화·슬럼화를 초래하게 된다.
출산율 0.7, 해외는 놀라는데 한국은 무심
국가소멸 징후도 사회 곳곳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출산율이 급락하자 소아과·산부인과는 의과대학생의 기피 전공이 됐다. 지방에 사는 임산부들이 분만병원을 찾아 대도시로 '원정진료' '원정출산'을 할 정도다.
저출생은 병역자원과 국가의 미래가 달린 과학기술 혁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병역자원과 이공계 석·박사과정 인력은 2025년 이후 본격 감소하는 구조다. 2025년 기준 군에 입대 가능한 20살 남성은 22만명으로 현재 군 병력 유지에 필요한 26만명에도 미달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무차별 흉기 난동 등으로 불안해진 치안을 강화하기 위해 2017년 폐지한 의무경찰 제도를 부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없던 일로 접었다.
과학기술 인력 부족도 완화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단절을 막는 것이 긴요하다. 하지만 전문직인 과학기술인마저 여성은 경력이 쌓일수록 결혼과 출산·육아 부담 때문에 사회참여 비율이 계단식으로 감소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는 외신들까지 앞다퉈 보도할 정도다. 미국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 31일 '부모에게 현금을 지급해도 세계 최저인 출산율이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제목 아래 한국 정부가 막대한 현금성 지원을 하는 데도 청년층에 통하지 않는 현실을 짚었다. 미국 방송 CNN과 영국 로이터통신은 1일 한국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가사·육아를 돕는 외국인 근로자를 시범 도입하기로 한 데 관심을 보였다.
CNN은 한국의 19∼34세 청년 절반 이상이 '결혼 후에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답했고, 36.4%만이 결혼에 긍정적이라는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를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시민사회 일각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확대보다 부모가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주당 근로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주거 교육 고용 이민 망라한 구조개혁
전국 모든 시군구 출산율이 현재 인구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대체출산율(2.1명)보다 낮다. 서울 관악구 출산율이 0.42명으로 가장 낮고, 가장 높다는 전남 영광군도 1.80명 수준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지방소멸'만이 아니라 '서울소멸' '국가소멸'도 시간문제다.
역대 정부가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나름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출산율이 계속 급락하고 국가소멸론까지 등장한 현실은 과거와 다른 접근방식과 정책조합을 요구한다. '아이 낳으면 돈 준다' 식의 단순한 출산장려책으로는 초저출생을 해결 못한다. 주거 교육 고용 이민정책을 망라한 사회 구조개혁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장관들더러 싸우라고 독려할 대상은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 낡은 이념 논쟁이 아니다. 아이 낳고 싶어하는 출생·보육친화적 환경 조성을 필두로 연금·노동·교육개혁 등 국가 미래를 결정짓는 구조개혁 과제들로 승부를 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