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종이팩 재활용률 14% 불과 … 활용처도 적어 문제 더 심각

2023-10-23 11:08:33 게재

'EPR 만능주의' 우려 목소리 커져 … 근본적인 제도 개선 시급해

"환경부가 종이팩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한다는데 현장에서 체감도는 극히 낮아요.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멸균팩과 살균팩 혼합배출 문제 등은 물론 기껏 모은 폐종이팩들을 활용하는 제지 회사가 많지 않다는 게 더 큰일이에요. 판매처가 많지 않은데 활성화가 되겠어요?"

17일 종이팩 등 수거·재활용 업체 대표 A씨는 이렇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또 "최근 재활용업계가 힘들어서 우리 회사의 경우 최근에 한 지역 지사를 폐쇄했다"며 "순환자원 활성화를 강조하지만 실제 현장은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종이팩 재활용 지지│9월 23일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열린 '9.23기후정의행진'에서 참가자들이 지구 모형이 부착된 모자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23일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종이팩 재활용률은 14%에 불과하다. 금속캔 유리병 페트병 등 전체 포장재 재활용율 평균은 88%인데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2010~2013년에만 해도 종이팩 재활용률은 30%대였다. 출고·수입량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10여년 새 재활용률은 반토막이 났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 의뢰한 '공동주택의 종이팩 회수·재활용 단계별 진단 및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전 세계 평균보다 낮고 유럽 미국 캐나다보다 저조한 상황이다. 2018년 유럽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49%, 미국은 60%, 캐나다 53% 등이다.


◆10여년 새 재활용률 반토막으로 뚝 = 국내에서 사용하는 종이팩은 크게 2종류로 나뉜다. 주로 우유팩으로 사용되는 살균팩(카톤팩)과 두유팩으로 활용되는 멸균팩(아셉틱 카톤팩) 등이다. 살균팩은 '폴리에틸렌(PE·인쇄면)+펄프 1+펄프 2+펄프 3+PE(내면)'로, 멸균팩은 'PE(인쇄면)+펄프+PE+알루미늄+PE+PE(내면)'로 구성된다.

종이팩은 압축과 해리 등의 과정을 거쳐 두루마리 화장지로 재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멸균팩 등이 섞인 두루마리 화장지의 경우 미세한 알루미늄 입자가 박혀있게 돼 시장 선호도가 떨어져 경제성이 낮다. 멸균팩의 알루미늄 성분과 PE코팅 수준 차이로 살균팩과 혼합 재활용이 힘들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환경부는 저조한 종이팩 재활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멸균팩과 살균팩 등 일반팩 분리배출 시범 사업을 실시했다. 또한 올해부터 멸균팩과 일반팩의 재활용 의무율을 다르게 적용하는 등 여러 대책을 펼치고 있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도는 낮은 편이다.

◆규모의 경제 형성 어려운 구조에 출혈경쟁까지 = 본디 종이팩은 규모의 경제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학교에서 우유 급식 등을 하던 시절에는 대량으로 폐종이팩을 회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일정 부분 문제를 해소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업체들 간 출혈 경쟁이 심해져 업계가 체감하는 어려움은 더 커졌다.

현장에서 종이팩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가 아닌 다른 제도로 관리를 해야 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PR은 제품 생산자나 포장재를 이용한 제품의 생산자에게 그 제품이나 포장재 폐기물에 대해 일정량의 재활용의무를 부여해 재활용하게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활용에 소요되는 비용 이상의 재활용 부과금을 생산자에게 부과하는 제도다.

17일 환경부 관계자는 "우유팩은 훌륭한 재활용 원료가 될 수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등과 협의를 해 분리배출 수거함을 따로 두는 식으로 회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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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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