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현장 리포트
빅3 자동차노조 동시파업, 주4일 근무제 시동걸기
지난 9월 15일 전미자동차노조(United Auto Workers, UAW)가 미국 자동차업계의 이른바 '빅3'인 제너럴모터스(GM) 포드 스텔란티스에서 일제히 파업에 들어간 지 거의 6주가 되어간다.
80년이 넘는 UAW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빅3 공장에서 동시에 파업을 벌이고 있고, 역시 사상 유래 없는 현직 대통령의 피켓라인 지지방문 등 여러 화제를 몰고 있는 이번 파업은 여전히 뜨거운 열기 속에 확대되고 있다.
게릴라식 '스탠드업 파업'
"오늘 밤 우리는 노조 창립 이래 처음으로 '빅3' 세 곳 모두에서 동시 파업에 들어갑니다. 우리는 '스탠드업 파업'이라는 새로운 전략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 전략은 사측이 예측을 하기 힘들게 하고 노조 대표들이 협상하는 데 있어 최고의 영향력과 유연성을 갖게 해줄 것입니다. 전면적인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면 그럴 것입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지난 9월 15일 0시를 기해 파업에 들어가면서 노조위원장 숀 페인은 새로운 파업전략인 스탠드업 파업을 발표했다. 모든 공장에서 일제히 작업을 멈추는 전면파업 대신 협상 진전상황에 따라 기습적으로 파업을 확대하는 새로운 전략이다. 마치 '게릴라전'처럼 필요에 따라 타깃을 조정하면서 기습적으로 파업을 확대해 사측의 파업대응에 혼란을 주고 예측을 곤란케 하면서 압력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지난 한달여 동안 이 스탠드업 파업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주었다. 시작은 포드의 미시간주 웨인 조립공장, 스텔란티스의 오하이오주 톨레도 지프차 조립공장, GM의 미주리주 웬츠빌 조립공장 등 핵심사업장 3곳에서 조합원 1만2700명이 참여하는 파업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지난 5주 동안 필요에 따라 빅3의 다른 공장들로 확대됐다. 특히 지난주에는 켄터키주 루이스빌에 있는 포드 최대 공장인 픽업트럭과 SUV 공장이 기습적으로 파업에 들어갔다. 최대수익을 내고 있는 이 공장의 파업으로 노조는 협상테이블에서 더 나은 협상안을 끌어내기 위해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처음 시도되고 있는 이 전략은 필요에 따라 필요한 사업장을 타격해 나가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모든 노조원들이 동시에 파업에 참여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노조원들이 지치고 노조에도 부담이 되는 상황을 막는 효과도 있다.
한달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파업에 전체 노조원의 약 23%만 참여하면서도 그 이상의 효과를 보고 있다고 지도부는 말한다. 이런 유연하고 대범한 전략이 가능한 것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지도부가 파업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평조합원 지지하는 전투적 노조위원장
"오늘부터 '싸우는 노조'가 되돌아왔다는 소식을 기업들에게 확실하게 알리겠다." 파업을 이끌고 있는 숀 페인 노조위원장이 지난 3월 당선 직후 한 말이다. 그는UAW 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조합원들의 직접투표를 통해 선출됐다.
그가 당선된 배경에는 기존 지도부의 무능과 부패가 있었다. UAW 노조 지도부는 그동안 노사협조주의로 평조합원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조가 양보와 타협을 통해 그동안 얻어온 많은 성과들을 포기했었다. 마찬가지로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조합원들이 목숨을 걸고 생산현장을 지켜왔지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과 삶의 질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 노조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게리 존스 전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다수의 노조 간부들이 횡령과 탈세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는 내부비리까지 터졌다. 이에 노조를 변화시키고 노조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투적인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현장에서 커졌다.
2019년 노조의 민주적 개혁을 위해 모인 노동자들로 시작된 현장조직 '민주주의를 위한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Unite All Workers for Democracy)'을 기반으로 숀 페인은 "부패 반대, 양보 반대, 이중임금제 반대"의 슬로건을 내걸고 위원장 선거에 출마했다. 레이 커리 전 위원장과 결선투표 끝에 불과 500여표 차이로 승리해 노조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노조원들의 직접 투표가 아니었다면 그의 당선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숀 페인 노조위원장은 변화를 바라는 평조합원들에게 화답하듯 당선 직후 기업과 노조 사이에 이어지고 있던 원만한 관계는 이제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임금협상 과정에서도 숀 페인 위원장은 사측과 악수하며 협상을 시작하는 전통 대신 조합원들과 악수하면서 협상에 돌입했다. 이 상징적인 제스처가 새로 태어난 UAW와 그에 걸맞은 지도부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금삭감 없는 주4일 근무제 요구
UAW 노조의 요구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주4일 근무제다. UAW 노조는 "조합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당 60시간, 70시간, 심지어 80시간을 일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현재 주40시간 표준근무 시간을 임금삭감 없이 32시간으로 줄이고 초과 노동시간에는 초과수당을 지불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 대담한 요구가 관철된다면 UAW 노조원들뿐 아니라 미국 노동계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 중심으로 확산된 재택근무는 팬데믹이 끝난 지금도 이어지는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하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재택근무나 원격근무 혜택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었다. 이번 UAW의 주4일제 요구로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요구가 점차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근무시간 단축에 대한 주장은 최근 몇년 간 설득력을 얻어왔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주4일 근무제에 대한 실험을 한 바 있는데, 영국의 경우 60개 기업 약 3000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4일 근무를 6개월 간 실시한 결과 기업들의 수익은 전년 대비 35% 증가하고 노동자들의 직업 만족도와 건강은 더 나아진 것으로 나왔다.
다른 나라의 실험에서도 주당 근무일수를 줄여도 생산성이 감소하지 않는 반면 노동자들의 만족도는 높아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즉,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윈윈이라는 것이다.
주32시간 근무제를 법제화하려는 노력 또한 근래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올 초 민주당 소속 마크 타카노 하원의원이 표준근무 시간을 현재 주40시간에서 32시간으로 수정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1930년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는 100년 후인 2030년 쯤에는 기술발달로 주15시간 노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예측이 곧 실현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자는 주장이 몽상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CNN은 UAW의 '주32시간 4일 근무제' 요구안에 주목하면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말을 인용해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경제학자이자 논설위원인 빈야민 애펠바움의 칼럼을 통해 노조가 이 요구안을 쟁취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 모두가 이익을 볼 것이다"라며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분명한 것은 UAW의 주4일 근무제 요구가 이번에 관철되지 못하더라도 이후 다른 협상의 의제로 계속 올라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1936년 미시간주 플린트의 GM 공장 연좌농성 파업에서 역사적인 승리로 결성된 UAW가 예전의 전투성을 되찾아 또다시 노조원뿐 아니라 미국인 전체의 삶을 개선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