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고립 … 사이버도박에 내몰리는 10대들

2023-11-16 11:59:37 게재

진입장벽 낮고 친구 데려오면 보상, 공존질환 문제도 … 지역별 치료 프로그램 등 대책 시급

#1. 17살 때 게임에서 만난 형한테 돈을 빌려서 사이버도박을 했다. 좀 멍청한, 착한 느낌의 형이었다. 처음에는 20만원을 그냥 빌려주다가 금액이 커지니까 달라졌다. 학교나 이름 등을 알려줘야 돈을 빌려줬다.

#2. 16살 때 아는 형이 사이버도박을 해보라고 해서 했다. 처음에는 몇만원씩 하다가 금방 금액이 몇백만원으로 올라갔다. 여기(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있을 때는 휴대전화를 안주니까 괜찮은데 나가면 어떨지 모르겠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도박 관련 프로그램들이 잔뜩 있다.

#3. 13살인가? 그때 처음 사이버도박을 했다. 동네 형이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엄마 몰래 갑자기 가져다줘야 했다. 친구에게 돈이 급하다고 하니까 자기가 하는 프로그램을 해보라고 했다. 넣은 금액만 1억~2억원은 되는 것 같다. 하루 만에 3000만~4000만원을 잃을 때도 있었다.

15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에 있는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만난 청소년들의 얘기다.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은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청소년(사이버 도박 중독 위험군)에게 맞춤형 치유 서비스를 상시 제공하는 치유기관이다.

15일 이해국 가톨릭의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는 "어린 시절 노출될수록 증상이 빨리 진행되는 게 마약 도박 등 중독의 공통적인 특성"이라며 "뇌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평생 동안 충동조절 문제를 겪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영태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 원장은 "불법사이버도박의 가장 큰 문제는 다단계처럼 이용자들을 데리고 오도록 하는 구조"라며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인센티브를 주는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쉽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의 2023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사이버도박 위험군은 2만8838명이었다.

이는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에서 개발한 측정도구 등을 활용해 중학교 1학년생과 고등학교 1학년생 등을 대상으로 4월 3~28일 조사한 결과다.

여학생(8439명) 보다 남학생(2만399명)이 2배가량 더 위험했다. 사이버도박 문제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중독 위험을 겪는 학생들도 1만2843명으로 절반 가까이 됐다.

이 교수는 "도박중독 청소년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등 공존질환을 겪는 게 일반적"이라며 "아이들 성향에 따라 도박중독 치료 접근을 다르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이버도박 등을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나라가 많지는 않다"며 "우리나라가 초기 시작은 빨랐지만 수준이 높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각 지역별로 아이들을 제때 치유할 수 있는 기구들을 만드는 등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는 지난해부터 국립청소년인터넷드림마을에서 사이버도박 중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숙형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시범운영을 거쳐 올해 7월과 11월로 2회 확대했다.

이 교수는 "상업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온라인에 유입시키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적절하게 기술적으로 차단하는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며 "도박의 경우 돈을 주위에서 꾸는 등 관계가 단절돼 설사 도박에서 벗어나도 함께 마음을 나눌 사이가 없기 때문에 다시 중독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독 문제에 대해서 정부부처가 분절적으로 대응을 하는데 다학제적인 접근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권영 여가부 청소년정책관은 "청소년들이 불법 사이버도박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여러 부처와 협력해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보다 많은 아이들이 빨리 치유가 돼 일상생활 속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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