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포커스 | 정치권도 '지역인구감소 영향권'

"서울 크기 지자체 4~5개를 한 지역구로 … 지역소멸 가속"

2023-12-15 10:54:44 게재

인구 몰리는 경기도 12개 지역구 '인구 상한 초과', 쏠림 가중 드러나

선거구획정위,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6개 지자체 지역구 제안

'지역대표성 보장' 권고를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국회 계류 중

우리나라 인구 감소 현상이 정치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 수도권 등 도심지로 모여들면서 비도시의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에 따라 거대선거구가 나오면서 지역 대표성 희석화 논란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인구 기준을 적용한 선거구 획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론과 농어산촌의 지역대표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섞여 나오고 있다.
진보4당·2024정치개혁공동행동, 선거제 개혁 촉구 기자회견 | 14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노동당·녹색당·정의당·진보당 등 진보4당과 2024정치개혁공동행동이 선거제 개혁 촉구 시민 캠페인 시작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15일 선거구획정위에 따르면 현재 인구감소와 이동 현상을 고려하면 253개 선거구 가운데 10%가 넘는 29개가 인구기준에서 어긋나 있고 조정이 필요하다.

인구 상한선을 넘어간 곳이 18곳, 인구 하한선에 미치지 못하는 곳이 11곳이다. 인구 비례(2대 1)를 적용한 인구 상한선은 27만1042명, 하한선은 13만5521명이다. 평균 인구수는 20만3281명이다. 동래구 선거구가 27만3177명으로 가장 많고 익산시갑 선거구가 13만6629명으로 가장 적다.

상한을 초과하는 18곳 중 12곳이 경기도에 있다. 경기도는 2곳에서 하한 미달이 나왔지만 인구수가 급증하면서 선거구를 추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한에 못 미치는 11곳 가운데에는 부산 3곳, 전북 3곳, 대구 2곳, 경기 2곳 등이 들어가 있다. 특히 대구는 상한 초과는 한 곳도 없지만 하한 미달이 2곳에 달해 인구의 빠른 이탈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북 역시 상한 초과는 한 곳에 그친 반면 3곳에서 하한 미달이 나오면서 인구 감소현상이 체감되는 곳으로 꼽힌다. 전남과 경북은 상한 초과 지역 없이 하한 미달 지역구만 한 곳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남 전북 경남에서는 인구 상한 초과 현상이 각각 1개 지역구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이 또한 도시 중심으로 이뤄지는 현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구를 주요기준으로 선거구를 만들려면 농어촌 지역의 경우 선거구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5개 이상의 시군구를 합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낸 신정훈 민주당 의원은 "인구 구성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에서 농산어촌 지역 선거구가 크게 줄어들고 통폐합 과정에서 지리적, 환경적, 정서적으로 이질적인 지역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거나 인위적으로 조정되는 과정에서 초거대 선거구가 출현하고 있다"며 "현행 국회의원지역구 중 3개 이상의 구·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 9개, 4개의 구·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 13개 선거구가 존재한다"고 했다.

실제 선거구획정위가 내놓은 22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을 보면 전북의 정읍시고창군, 남원시임실군순창군, 김제시부안군, 완주군진안군무주군장수군 등 4개 지역구를 3개로 줄이면서 정읍시순창군고창군부안군, 남원시진안군무주군장수군, 김제시완주군임실군으로 조정했다. 4개 지자체를 묶은 지역구가 1개에서 2개로 늘어났다. 속초시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고성군 등 6개 지자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제시하기도 했다. 인구가 늘어난 춘천시를 2개의 지역구로 만든 결과다. 전남에서도 한 개의 지역구를 줄이면서 4개 지자체로 만들어진 해남군영암군완도군진도군 지역구가 나왔다. "순천과 여수 도시지역을 4개선거구로 늘리면서 농어촌지역의 선거구를 줄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공직선거법 25조에는 선거구 획정 기준과 관련 "시·도의 관할구역 안에서 인구 행정구역 지리적 여건 교통 생활문화권 등을 고려"할 것을 요구하면서 "인구범위를 벗어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을 고려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역구를 유지하거나 거대 지역구를 만들지 말아야 하는 게 '의무'가 아닌 '권고'라는 얘기다.

선거구획정위도 "인구비례와 자치구·시·군 일부 분할을 금지한 현행법상 획정기준을 준수할 수밖에 없어 거대선거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지 못한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면서 "현재와 같은 인구구조와 획정기준에서 이 문제는 반복될 수밖에 없으므로 향후 입법적 보완이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선거구 획정위가 지역의 인구감소에 대응한 것은 법정 획정기준을 준수하면서 '지방의 지역대표성 강화를 위해 가급적 수도권 증석을 지양'한 게 전부였다.

신 의원은 "초거대 선거구로 인해 지역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선거구가 증가하고 농어촌 선거구의 무분별한 통합으로 도농 간 불균형이 심화되어 지역소멸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한 표의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받을 수 있는 '표의 등가성'도 중요하지만 지역소멸을 방지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인구 대표성' 못지않게 '지역 대표성'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지역구를 획정함에 있어 농산어촌의 지역대표성이 반영되도록 해 도시와 농어촌간 격차를 해소하고 지역대표성이 고르게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했다.

서삼석 의원 역시 "인구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면서 6개 시·군에서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아야 되는 참담할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인구감소로 농업, 농촌, 농민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농어촌 붕괴와 지역 소멸의 극복은커녕 이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선거구획정 실무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이해식 민주당 의원은 "거대선거구에 대해서는 여야 모두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하나의 지자체가 서울 만한데 그런 지자체 5~6개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게 되면 지역구 의원이 각 지역에 사무실을 내야 하는 등 비용 뿐만 아니라 현장에 다니면 지역구 유권자를 만나기도 어렵다"고 했다. 호남지역 모 의원은 "주말마다 내려가서 돌아다니는 데도 유권자마다 만나면 하는 얘기가 '왜 이렇게 얼굴을 안 비치냐'는 것"이라며 "한번 도는 데도 엄청난 시간이 들어 한 바퀴 돌고 다시 가면 처음 보는 것처럼 된다"고 했다.

여야는 선거구획정위에서 1차안이 제시된만큼 정치개혁특위를 열어 국회의 요구안을 제시, 관철시킬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거대선거구를 해소하고 도시집중을 차단하는 방안이 제안될 것으로 보인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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