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경북형모델│경상북도·내일신문 공동 기획
지역·주민 중심 '경북형 모델' 뜬다
경상북도, 건강수명 AI 알고리즘 개발로 건강수명 관리
건강수명 지역별 격차 줄이는 지역 형평성 실현 기대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워킹햄에서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건강하게 70년을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같은 시기 맨체스터에서 출생한 청소년은 단지 56년 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영국의 건강수명 지역 격차에 놀라겠지만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HP2030)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건강수명 전국 1위인 용인 수지구는 75.3세, 제일 낮은 부산 영도구는 62.2세로 13.1세의 격차가 있다. 이른바 건강수명에서의 건강 형평성 문제가 우리 사회 공정 이슈와 결합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경상북도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울릉군의 건강수명은 74.31세고 영덕군의 건강수명은 65.62세로 8.69세 차이가 있었다. 건강수명이 차이가 나는 데에는 지역, 소득, 교육 수준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이 변수들의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추적관찰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수명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역 독자 모델을 기획한 경상북도의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건강수명 10년 연장 프로젝트'는 건강수명 지역 형평성 문제의 해결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의료 기술의 발달로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계속 증가해 OECD 국가의 평균을 웃돈다. 2018년을 기준으로 OECD 국가 평균은 80.7세,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82.7세다. 하지만 15세 이상 인구 중 본인이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2%로 OECD 국가 평균 67.9%에 비해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오래 살지만 건강하지 않은 상태로 산다고 생각한다. 실제 2018년 조사에서 유병 기간이 12.3년으로 2008년보다 1.6년 더 늘었다.
건강수명은 기대수명에서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유병 기간을 뺀 기간으로 '얼마나 오래 건강하게 사는가'를 나타내 주는 지표다. 건강수명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기대수명과는 약 12년의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의 2018년 기준 건강수명은 70.4세로 남성은 68.3세, 여성은 72.4세다. 2030년까지 73.3세로 늘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별(시군구별) 격차는 지난 11년간 줄어들다가 최근 몇년 동안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2018년 기준으로 건강수명 상위 20%인 지자체와 하위 20%인 지자체의 격차는 2.7세인데 지난 11년 평균 2.5세에 비해 조금씩 늘고 있다. 비슷한 지역에서도 시군별 격차가 있다. 경상북도에서 건강수명이 70세가 넘는 지역은 울릉군, 영주시, 울진군, 김천시, 안동시, 경주시, 포항시가 해당하지만 영덕군, 상주시, 성주군 등은 68세가 되지 않는다. 건강수명이 가장 높은 울릉군과 가장 낮은 영덕군 사이에는 약 8.7세의 차이가 있다.
경상북도가 시군 단위의 건강수명 연장과 격차 감소를 실천 목표로 설정하고 '경북 건강수명 10년 연장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이다.
◆질병 없이 오래 사는 건강수명 연장하기 = 경북 건강수명 10년 연장 프로젝트는 경북 지자체 건강수명 연장 사업과 고교 건강수명 빅데이터 교실, 건강수명 예측 AI 프로그램 개발을 주요 사업으로 진행했다. 건강수명 연장 사업은 경상북도내 시군간 건강 형평성 제고와 전국 최장 건강수명 자치단체 실현이 목표다. 건강수명 실천, 정신건강 관리, 비감염성 질환 예방관리를 주요 지표로 설정하고 경상북도와 22개 시군 보건복지 담당자, 보건의료 전문가, 공공통계 전문가들로 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9월에는 보건의료 및 건강수명 담당자 58명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개최해 경북도가 추진하는 건강수명 AI 알고리즘과 시뮬레이터를 설명하고 건강수명 연장 목표, 관리 지표에 대한 1차 교육을 실시했다.
포항시 남구와 청송군을 시범 지역으로 선정해 건강수명 AI 알고리즘을 적용한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2020년 데이터를 기준으로 지표 변화에 따른 건강수명 증감을 시뮬레이션해 보니 포항시 남구는 '1년 후 당뇨병 투약 순응률'과 '1년 후 당뇨병 정기방문율'을 2% 늘리고, '30세 이상 당뇨병 진단 경험률'을 2% 줄였을 때 건강수명이 0.453세 증가했다. 청송군의 경우 걷기 실천율, 연간 체중조절 시도율, 고위험음주율 등 취약 지표를 경북 최고 수준으로 개선할 때 건강수명이 0.625세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포항시 남구의 건강수명 연장을 위해서는 당뇨 관리가, 청송군은 걷고 살 빼고 술 끊기가 중요함을 알리는 포스터를 제작하고 그에 맞는 정책과 사업을 기획하고 홍보할 계획이다.
고교 건강수명 AI빅데이터 교실은 의료보건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기초통계 및 데이터 활용 능력과 건강수명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기획됐다. 경상북도내 10개 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강수명 공공데이터를 자료로 엑셀 프로그램을 활용한 통계 분석 실습을 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건강수명 관련 주제를 탐구하고 보고서를 제출했다. 지난 23일 발표대회를 통해 3개팀의 최종 우수 탐구보고서가 선정됐다.
◆경상북도, 건강수명 예측 AI 알고리즘 개발 = 11일 포항테크노파크에서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 보고가 있었다. 경북지역 시군 보건의료 담당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그간의 프로젝트 추진 상황을 공유하고 건강수명 예측을 위한 AI 알고리즘과 시뮬레이터 교육이 진행됐다. 송재욱 한양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경북의 시군구 단위의 인구동향조사, 지역사회건강조사, 국민건강보험통계 등의 자료를 수집해 비전문가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건강수명 산정 모형과 시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송 교수는 "처음에는 보건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는 내년에도 업데이트가 가능한 체계까지 구축했다"며 "삶의 질 보정 건강수명(QALE)과 보건복지부 공표 건강수명(HALE) 지표로 인공 신경망 기반 알고리즘을 사용해 변수 간 복잡한 관계성을 설명하는 기계학습 기반 산정 모형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 모형에 근거해 분석하면 변수 중요도에 따른 각 지역 정책의 우선순위를 도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송군의 경우 시뮬레이터를 통해 개별 변수를 경북 최고 수준으로 개선했을 때 건강수명 변화에 가장 영향을 주는 지표는 '뇌혈관질환 의료 이용률'임을 알 수 있었다. 즉 건강수명 연장을 위해 지역별로 어떤 지표를 최우선으로 향상해야 하는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이후에는 보건의료 담당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이 자료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는 사업계획서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곽미숙 경상북도 보건정책과 주무관은 "내년 계획을 세울 때 우리가 자체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활용하면 좋다"며 "건강수명에 영향을 많이 주는 지표를 지역별로 확인할 수 있고 나아가 지역민들을 위해 가장 효과적인 사업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주도형 건강수명 사업에 대한 관행을 깨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의 지역 특성에 근거한 독자적인 시스템 개발은 의미가 있다. 경상북도는 올해 안으로 각 시군에 시뮬레이터와 분석 자료집을 제공해 2024년 건강정책 수립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후 평가와 보완을 거쳐 프로그램 역시 매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김규철 최세호 기자 · 조진경 리포터 jinjing87@naeil.com
[관련기사]
▶ [인터뷰│김건엽 경북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 "건강수명 연장, 지역 의료계 역할 중요"
▶ [인터뷰│윤성용 경상북도 보건정책과장] "경북도민의 건강수명 연장에 앞장"
▶ [인터뷰│송재욱 한양대 산업공학과 교수] "보건 관련 데이터 체계화로 활용도 높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