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 대응 소홀 국가·지자체 책임 인정 잇따라
법원 "서초구 맨홀 추락 남매에 16억원 배상"
서초구 "항소여부 검토" … 초량사건은 합의
폭우와 지진 등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여름 서울지역 폭우 당시 맨홀에 빠진 시민 죽음에 관할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중부지방에 내린 기록적 폭우 당시 서울 강남역 한 맨홀에 빠져 숨진 남매의 유족에게 서초구청이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3부(허준서 부장판사)는 폭우로 사망한 남매 유족이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서초구가 유족들에게 16억475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서 지난해 8월 8일 남매인 A씨와 B씨는 서초구 소재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폭우로 시동이 꺼지자 차에서 내려 도로를 건너던 중 변을 당했다. 도로가 빗물에 잠겨 뚜껑이 열린채 방치돼 있던 맨홀을 발견하지 못했고 맨 홀 안으로 추락했다.
유족들은 "해당 도로의 관리청인 서초구는 도로에 위치한 맨홀에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며 "설치·관리상 하자로 인한 사고이므로 배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서초구측은 "사고 당일에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고 맨홀 뚜껑 개방 역시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라며 "예측가능성이나 회피가능성이 없어 배상책임도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맨홀 설치·관리의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서초구 책임을 인정했다.
사고 장소 일대는 낮은 지대와 항아리 지형으로 집중호우시 상습침수 지역이었다. 특히 서초구가 2016년 강남역 일대에 잠금장치가 있는 맨홀뚜껑 교체공사를 했던 점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재판부는 "하수도에서 빗물이 역류해 맨홀뚜껑이 열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며 "서초구는 맨홀뚜껑이 항상 닫혀 있도록 관리해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맨홀뚜껑이 열려 있는 것 자체가 도로가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상태, 즉 하자로 본 것이다.
다만 숨진 남매 책임도 일부 인정했다. 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아는 이상 주의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서초구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서초구 관계자는 "유가족분들께 거듭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항소 여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고 현재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유사한 사건으로는 2020년 부산 초량지하차도 사건이 있다. 당시 갑작스런 호우로 지하차도가 침수돼 3명이 사망하고, 차량 7대가 물에 잠겼다. 1심 재판부는 지하차도 관리를 소홀히 한 공무원 11명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중 4명에 대해 무죄로 판단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관할 구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부산 동구는 피해자들에게 빠른 배·보상을 위해 법원에 조정을 신청했고, 양측은 조정 절차를 거쳐 민사합의를 한 바 있다. 당시 부산 동구는 법원 판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돼 유족에게 더 큰 아픔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조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경북 포항 지진과 관련해 국가 등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바 있다.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 등 지진 피해 포항시민들이 국가와 포스코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에게 200만~3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올 7월에도 충청북도 청주시 오송읍의 궁평2지하차도가 폭우로 인해 침수돼 14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청주지방검찰청은 최근에도 충북도와 청주시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