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장관의 자격' … 불법·부정·특혜에 비전문가도 통과

2024-01-10 11:14:50 게재

2기 내각 인사청문회 마무리 … "인사청문회 안 하는 게 더 낫다"

부실검증·자료제출 거부·임명강행, '3단계 모두 부실' 지적

김진표 의장 "75%, 청문 관계없이 임명돼면 아무 의미 없는 것"

"후보자가 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아 자료 제출을 할 수 없습니다."

조태용 국정원장후보자에게 국회에서 제기한 자료요청에 대한 일관된 답변이다. 민주당 정보위 소속 의원들은 9일 "건강보험료 납부, 기부금, 고속도로 통행료, 과태료 및 범칙금, 부동산 거래, 장학금 수령, 공무원연금 수급 등 국회 자료제출을 위한 정보제공에 '부동의'한 내역들은 셀 수 없을 정도"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안하무인 태도는 '역대급'"이라며 "국회 인사청문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입법부 경시행태"라고도 했다.

선서문 전달하는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 |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태호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자료제출 거부'는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 이어진 특징이다. 인사청문회때마다 야당 의원들은 자료제출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자료제출을 차단하는 '자료제출 부동의'로 일관했다. 인사청문회 당일에도 시간을 뒤로 미루다가 일부만 제출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게 '관례'가 됐다. 자료제출 거부 근거로는 '개인 정보'이고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회는 자료 없이 인사청문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야당의원들 입에서는 "청문회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수시로 나왔다. 특히 현 장관인 정황근 장관후보자가 인사청문회때 썼던 답변을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후보자가 자신의 답변서에 그대로 '복붙'한 것은 '인사청문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읽힌다.

이에 앞서 인사 검증의 첫 단계인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의 인사 검증 자료 제출과 대통령실의 선택 과정에서 '장관의 문턱'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인사검증이 부실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준자체가 낮아졌다'는 쪽으로 수렴하는 모습이다. 민주당 모 의원은 "조금만 알아봐도 알 수 있는 병역, 탈세, 법인카드 유용, 폭력 전과, 부당소득공제, 불법 증여, 위장전입, 논문 표절 등의 의혹을 대통령실이나 인사정보관리단에서 몰랐을 리 없다"면서 "알면서도 후보자로 올린 것은 문제되지 않다고 보는 것"이라고 했다. '장관의 자격'이 매우 낮아졌다는 얘기다. 특히 이번 윤석열정부 2기 내각의 두드러진 특징은 '비전문가'도 대거 기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관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후보자에 지명했고 경영학자를 보훈부장관후보자로 챙겼다. '검찰' 출신 김홍일 방통위원장후보자는 스스로도 '비전문가'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임명 독주'에 나섰다. 야당의 반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청문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으면 통상 10일 이내에 재송부요청을 할 수 있어 관행적으로 3일이나 5일 정도의 여유를 주고 국회에서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했지만 최근엔 이것도 달라졌다. 김홍일 후보자에 대해 하루의 기한을 주면서 청문경과보고서를 다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야당은 "최소한의 절차와 염치도 없는 인사"라고 반발했다.

현재까지 윤 대통령이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장관급 인사는 취임 1년 7개월여 만에 24명으로 늘었다.

민주당 모 중진의원은 "비리를 저지르고 의혹이 켜켜이 쌓여있는 후보자들이 아무런 제한없이 추천되고 인사청문회는 하나마나 하루만 버티면 대통령이 무조건 임명하는 방식으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려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더 낫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국회뿐만 아니라 국민, 언론도 인사청문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했다. "인사청문회 없이 대통령이 맘대로 임명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 등이 검증하는 수준으로 하는 게 낫지, 지금처럼 하려면 인사청문회는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인사청문회 개선 의지를 보이면서 "청문 결과에 어떻게 됐든 국민들이 관심이 없다고 판단을 해서 그런지 현 정부 들어와서 32건의 인사청문 요청이 있었는데, 그중에 25%인 8건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고 나머지는 청문보고서가 채택이 안 되는데 거의 다 발령 났다"며 "그러면 청문제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지금처럼 75%가 그 청문과 관계없이 그냥 임명돼버리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낮아진 장관 기준'은 부처에서의 리더십 부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모 중진급 의원은 "장관에 대해 부처 공무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자격이 미달되거나 비전문가들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나"고 했다.

김 의장은 "종합적으로 인사위원회에서 평가해보고 이 정도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돼야 되지 않을까"면서 "그런 절차를 거치면 우리의 경우에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우리 정치와 또 정부의 주요 장관 차관들, 정부의 장관과 이런 사람들에 대한 정책 신뢰도가 높아야 정책의 실효성도 좋아지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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