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언의 세상탐사
'일베' 현상 이해하려면
역사 왜곡과 호남·여성 비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극우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베의 막말과 욕설은 단순히 사회적 일탈로만 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민주당등 일각에서는 일베를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다. 폐쇄한다고 해서 사회적 병리인 '일베 현상'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일베에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폄훼하거나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리는 게시물들이 버젓이 올라 있다. '김치녀'(여성 비하),'홍어 택배'(5·18 희생자 조롱) '좌좀'('좌빨 좀비'의 준말로 진보진영 비아냥) 등 막말도 난무한다. 욕설도 비일비재하다.
'민주화'란 말도 '개성을 무시한 획일화'란 뜻으로 왜곡해서 쓰인다. 한마디로 익명성을 무기로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쏟아내는 '시궁창'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반사회적'이라는 이유로 '일베충'들의 손가락을 묶어버리기는 어렵다. 일베를 폐쇄하더라도 제2의 일베가 등장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표현의 자유를 봉쇄하면 자칫 비판세력에 대한 정치권력의 탄압을 용인하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타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치 범죄를 옹호하는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법적 책임을 따지는 독일방식을 원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일베 현상'을 해소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 일베 회원은 "일베 죽이기 작전은 오히려 일베를 전국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자랑했다.
광주시가 운영중인 5·18역사왜곡 온라인 신고센터에 막말이 쏟아졌다. 일베 게시판에는 "5·18신고센터 가서 실명으로 '5·18은 폭동'이라고 부르짖고 왔음"이라는 인증글이 올랐다. 게다가 국정원은 회원 대상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국정원이 후원세력인 셈이다.
일베 전국민에 알린 계기로 작용
'일베 현상'을 이해하려면 일본의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회'(재특회)를 보면 된다. 최근 한글로 번역 출판된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는 재특회의 어두운 실상이 드러나 있다. 저자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씨는 재특회가 "인터넷을 통해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어투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거리시위로 불러냈다"고 밝혔다.
재특회는 종군위안부와 난징학살을 부정하고 "재일코리안은 약자인 척하는 특권인종"이라고 주장한다. '바퀴벌레 조선인' '짱개를 내쫓아라' 등 모욕적인 구호도 외친다. 2011년 8월에는 도쿄 후지TV 앞에서 "뒈져라, 후지 테레비!"라고 한류 프로그램 방영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김태희의 독도 발언을 문제삼아 일본 입국을 막은 것도 그들이다.
이들의 행태는 일베와 닮은 점이 많다. 일베가 아직 거리시위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만이 다를 것이다. 재특회의 모체는 '2채널'(일본 최대의 보수우익 인터넷 익명 게시판)을 통해 애국·반조선·반중국·반좌익을 호소한 '넷우익'들이다. 이들은 하루종일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잡고 '조선인은 죽여버려'라고 필사적으로 글을 올린다 이들은 익명성을 방패삼아 모욕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이에 따라 '공격적 은둔형 외톨이'라는 야유를 받았다. 국내의 '일베충'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을 유명인사로 만든 것은 '희망의 방송사'로 불리는 채널 사쿠라였다. 이 방송은 보수논객을 프로그램 게스트로 등장시켜 유명인사로 만들고 우익의 집회 시위를 조직했다.
인터넷을 전장으로 하던 우익을 거리의 활동가로 만든 것이다. 국내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을 퍼뜨려 사회적 지탄을 받은 일부 종합편성채널과 비슷한 역할이라고나 할까.
사람은 환경에 의해 길러진다
야스다씨는 재특회 회원들은 "당신의 이웃"이라고 단언한다. "사람좋은 아저씨나 아줌마, 젊은이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증오가 재특회를 만들고 키웠다. 거리에서 소리치는 녀석들의 저변에는 복잡하게 뒤엉킨 증오의 지하수맥이 펼쳐져 있다."
나치를 지탱한 것은 일반시민이었다. 폭력적이고 오만한 파시스트가 아니라, 무언가 갈망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은 시대, 고독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강한 사람에게 붙으려 한다. 사람은 파시스트나 인종주의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길러지는 것이다.
김주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