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없이 그냥 들어선 스위스 산골 낙농가

"농장에서 휴지 버렸다가 벌금 8만원 냈다"

2015-11-30 10:59:57 게재

지역주민 피해 없도록 가축분뇨 뿌릴 때 신경

23일 오후, 두 개의 큰 호수가 있는 스위스 중부 '인터라켄'을 지나 '루쩨른'으로 가는 길에 있는 '브린츠' 지역 산 아래 낙농가를 예약도 없이 불쑥 방문했다. 이곳은 치즈도 만들어 판다. 농장주 도리스 미셀이 한국에서 온 불청객들과 1시간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방문단 7명은 저마다 치즈 800g씩 구입했다.

세계적 공급과잉으로 원유가격이 떨어지자 스위스의 낙농가는 겨울철에도 치즈를 만들어 팔고 있다. 스위스는 알프스산맥의 약초를 먹고 자란 젖소라는 이미지를 내세운다. 스위스 브린츠 = 정연근 기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농업강국들에 둘러싸인 작은 산악국가 스위스는 식품자급률 60%를 기반으로 유제품을 수출한다. 금융과 기계산업 등을 기반으로 1인당 국민소득 8만달러가 넘는 나라답게 농업도 '청정 스위스'를 이미지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워 생존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이곳에서 농촌은 경관을 제공하는 공공재다. 도리스는 "덴마크나 네덜란드처럼 스위스에서도 농업을 하려면 농업학교를 다니고 자격증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도리스는 "몇 년 전 가축 똥이 묻은 휴지를 그냥 뒀다가 벌금 70프랑(약 7만9000원)을 냈다"고 말했다.

농업은 생명산업이다. 농장을 운영하려면 까다로운 규정을 지켜야 한다. 어느 소가 얼마나 원유를 짰는지, 병은 없는지 등을 기록해 놓지 않아도 벌금을 낸다. 지방정부는 농장규모에 맞게 가축을 기르고 있는지 cm단위로 따진다.

소젖을 짜는 착유기도 다 풀어서 검사한다. 공무원들은 점검나올 때 3~4일 전에 예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나오는 경우도 있다.

축산농가는 지역사회와 갈등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도리스는 "가축분뇨를 뿌려도 토요일이나 일요일 등 쉬는 날에는 뿌리지 않고, 날씨가 좋거나 안 좋을 때도 뿌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날씨가 좋으면 관광객들이 많고, 저기압일 땐 냄새가 많이 난다.

스위스의 농촌생활도 힘들다. 도리스는 착유우(젖을 짜는 소) 30마리를 키우는데, 소들을 산에서 방목하는 여름엔 매일 원유를 나를 수 없어 모두 치즈를 만든다. 치즈저장고에는 7월에 만든 치즈들이 가득했다. 산에도 '우유를 만드는 기계'가 있지만 전기가 없어 수동으로 돌린다.

겨울엔 이틀에 한 번씩 집유차(원유를 수거해 가는 차량)가 온다. 그러나 원유납품가격이 지난해 리터당 0.7스위스프랑(약 786원)에서 올해 0.52스위스프랑(약 584원)으로 폭락해 올핸 겨울에도 치즈를 만든다. 원유로 파는 것보다 이익이기 때문이다.

치즈 1kg을 만들기 위해선 10리터의 원유를 사용하지만 치즈가격은 농가를 방문한 이들에게 팔 때엔 1kg에 18스위스프랑(약 2만230원)이다. 원유로 파는 것보다 세 배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대신 매일 치즈를 만드는 고단한 노동을 해야 한다. 치즈는 농가에서 직접 팔기도 하고 인근 가게에 납품하기도 한다. 다행히 치즈는 다 팔린다고 했다.

정부는 농가에 소득보전직불금을 준다. 농촌의 불편한 삶을 감내하면서 공공재를 공급하는 댓가다. 전에는 가축마릿수를 기준으로 했지만 지금은 토지면적을 기준으로 한다. 금액은 ha당 2000프랑(약 225만원)이다. 그는 28ha 농지를 갖고 있어 5만6000프랑(약 6295만원)의 직불금을 받는다.

스위스에서 살아가는 보통 농가의 삶은 직불금, 농외소득(남편 직장월급)에 농업소득을 합쳐야 살아갈 수 있다. 남편은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퇴근 후엔 농장일을 돕는다. 4월에서 10월 중순까지는 인건비가 싼 폴란드인을 고용한다. 도리스는 "사료도 비싸서 구입하지 않고 옥수수와 건초를 말려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부부는 다섯 아이를 뒀다.

도리스는 농장일에 관심을 갖고 있는 18세 큰 아들에게 농장을 상속할 생각도 갖고 있다. 스위스는 상속할 때 농업을 이어가면 혜택을 준다. 도리스는 "기본상속세가 있지만 자녀가 농업을 하면 세금이 거의 없고, 안하면 기본세금의 5배를 낸다"고 말했다. 낙농은 남편집안에서 10대 이상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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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브린츠 =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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