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민건강의 바로미터, 간호인력 문제

2023-06-14 10:55:27 게재
탁영란 대한간호협회 제1부회장

의료현장은 물론 다양한 보건의료현장에서 간호인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간호사 배치수준은 환자의 사망률 패혈증 재입원 등 여러가지 건강결과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다시 말해 적정한 간호사 배치와 간호인력의 역량 수준은 환자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정부는 지난 2008년부터 간호학과 신설 및 입학정원 증가, 유휴 간호사 재취업 활성화 등을 추진했으나 이는 간호인력의 확보 및 지속에는 실패한 정책이고 활동 간호인력 적정 확보에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만성적 간호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규 배출 인력만 늘릴 게 아니라 먼저 간호사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는 이유를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간호법을 제정해 간호인력 적정 근무환경과 배치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신규간호사의 경우 1년 이내 사직률이 2014년 28.7%, 2016년 35.3%, 2018년 42.7%, 2020년 47.4%에서 2021년 52.8%로 매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사직 이유로 업무부적응이 32.6%로 가장 많다.

신규간호사가 간호대학에서 4년간 배운 이론을 현장 실무에 적용하는 적응기간이 우리나라는 턱없이 부족하고 짧다. 외국의 경우 간호인력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제도와 지원 아래 신규간호사의 병원적응과 환자안전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떠나는 원인부터 파악해야

신규간호사 임상 적응 지원기간으로 미국의 경우 '간호사 레지던시 프로그램(NRP)'을, 호주는 '트랜지션 프로그램(Transition Program)'을 각각 1년 교육훈련 기간으로 제도화해 정부 지원 아래 의료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의료기관에 따라 신규간호사 교육기간이 상대적으로 매우 짧고 30일 이하로 교육을 시행하는 기관이 대부분이다.

간호인력 부족을 야기시키는 또 다른 문제로는 높은 노동강도와 열악한 근무환경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은 간호사 1명이 평균 16.3명, 병원은 43.6명의 환자를 맡고 있다. 이는 미국(5.7명), 스웨덴(5.4명), 노르웨이(3.7명)와 비교해 적게는 3배 많게는 11배나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법에 간호사에 대한 배치기준을 두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사문화됐다. 정부는 간호인력 부족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공감한다' '해결책 모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만 되풀이 해오고 있다.

절대적인 의사 부족으로 의사는 간호사에게 불법진료를 강요하고, 병원장과 의사는 간호사에게 의료기사와 약사의 업무를 강요하는 불법이 현장에서 오랫동안 수시로 자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불법에 대한 관리감독의 직무를 수십년째 방기하고 있다. 의료법은 70여년 미라상태로 현실을 외면한 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건강과 환자안전 위한 제도적 장치

이제는 정부가 적극 나서 국민의 건강과 환자의 안전을 위한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간호법 제정이다. 코로나19를 경험한 이제는 더 이상 말로만 간호인력난에 대해 공감만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간호인력은 바로 국민생명과 직결된 문제이자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