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변죽만 울린 '라면값 인하'

2023-07-13 10:55:09 게재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등 라면회사들이 이달 1일부터 라면값을 내렸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국제 밀가루값이 떨어졌으니 라면값을 내리라"고 권고(?)한 지 2주 만이다.

당시 추 부총리 발언은 의외였다. 볼멘소리도 터져나왔다. 자유시장경제를 부르짖고 있는 윤석열정부 경제수장이 할 소린 아니지 않냐는 얘기였다. 파장은 컸다. 라면회사가 백기를 들자마자 과자·빵 회사들도 덩달아 가격인하 대열에 동참했다. 버티던 밀가루회사들도 투항했다.

'가격인하 이벤트'는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식료품값 연쇄 인하가 있을 것 같았던 초반 분위기와 달리 우유 술 등 가공식품값은 요지부동이다. 사룟값 인하 압박설이 돌지만 일부 식음료회사는 되레 가격인상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작 라면회사들도 잘 팔리는 주력 라면 일부는 값을 내리지 않았다.

소비자단체는 '생색내기'라며 비판한다. 여론에 떠밀려 가격인하 시늉만 냈다는 불만이다.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가격인하를 결단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고물가 시기에 원가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했다면 이젠 원가인하 이익을 소비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다.

올 들어 가격을 올린 식음료제품은 어림잡아도 100가지를 훨씬 넘는다. 1월 남양유업 프렌치카페 카페믹스와 오뚜기 후추, CJ제일제당 된장을 시작으로 7월 참치캔과 설빙 인절미빙수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라면 과자 빵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다.

몇몇 밀가루원료 제품 가격인하로 서민 밥상물가가 잡힐 리 만무하다. 정부가 자유시장경제 정책기조마저 무시하고 가격통제에 나섰다지만 '짜고치는 고스톱'이지 않았나 의심이 들게하는 대목이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국민들이 고통받는 유럽정부 행보와 견줘도 그렇다.

외신을 종합하면 프랑스정부는 3월부터 유통업계와 협의해 핵심식료품 값을 할인판매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프랑스정부는 75개 음식료기업으로터 가격인하 서약서까지 받아 냈다. 영국정부는 빵 우유 등 핵심식료품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시장감시를 강화했고 이탈리아에선 파스타가격이 급등하자 소비자단체가 정부에 가격통제를 요구했다. 유럽은 물가상승 억제라는 같은 목표 아래 소비자가 체감가능한 카드를 꺼내든 모양새다.

정부 '권고든 압박이든' 유통업계가 13년 만에 가격인하라는 '결단'을 내린 건 새삼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아 보인다. 정부 물가정책도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보여주기식' 정책 그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 그저 변죽만 울렸을 뿐이다.
고병수 기자 byng8@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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