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검은 진주보다 평화가 우선이다

2023-09-13 11:30:47 게재
임종식 지경학 칼럼니스트

"나의 꿈이 출렁이는 바다 깊은 곳, 흑진주 빛을 잃고 숨어 있는 곳, 제7광구 검은 진주~" 1980년대 유행가 '제7광구'의 노랫말이다. 그런데 제7광구가 있는 대륙붕의 운명이 위태롭다.

1974년 한국과 일본은 유효기간 50년의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 체결했다. 1978년 협정 발효 후 시작했던 공동탐사 활동은 1993년 이후 중단돼 현재 진척이 없는 상태다. 그 이유는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한 국제법이 일본에 유리하게 변경되자 일본이 소극적 태도로 급변했기 때문이다. 협정은 2025년 이후 일본의 일방적 종료통고로 2028년에 종료될 가능성이 크다. 종료 이후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대륙붕협정 종료되면 분쟁수역될 것

다른 대안없이 협정이 종료되면 대상수역은 대륙붕 경계획정과 관련된 한국 일본 중국의 경제적 이해가 충돌하는 분쟁수역이 될 것이다. 1974년 협정 조인 당시 중국은 자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난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동중국해의 대륙붕 경계획정에 관해 한국은 육지영토의 '자연연장론', 일본은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수역의 중간선을 기준으로 하는 '중간선원칙론'을 주장한다. 중국은 자연연장론을 반영한 '형평원칙론'을 주장한다. 형평원칙론이란 중간선을 잠정적으로 그은 후 개별사정을 고려해 수정해 획정하는 이론을 말한다. 중국은 개별 사정으로서 자국에 유리한 영토의 크기, 해안선 길이, 인구, 해저지형 등을 든다.

국제사법재판소는 과거 한국에 유리한 자연연장론을 판결의 근거로 했으나 최근 형평원칙론을 고수한다. 형평원칙론은 한일 사이에서는 일본에 유리하나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일본이 불리하다. 자연연장론을 내세우는 한국과 중국은 오키나와 해구가 일본과의 경계라고 주장한다. 일본은 전략적으로 경계획정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다. 동중국해의 대륙붕 경계는 장기간 미획정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정이 종료되면 동중국해는 7개 수역으로 구분될 것이다. 한중일, 한일, 한중, 중일 등 4개의 중첩수역과 각국이 관할하는 3개 수역 등. 해저자원의 분포 상태가 2개 이상의 수역에 걸칠 수도 있으므로 각 수역의 개발은 인근 수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3국의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힐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중일 정상회담 재개 명분으로 삼자

선행연구를 원용해 두 단계 전략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이 종료되면 기존 수역은 한중일 및 한일 중첩 수역과 일본 수역으로 분리되어 한국의 주권적 권리 영역이 대폭 축소된다. 그러므로 협정을 유지할 수 있으면 유지하는 것이 좋다.

1단계 유지 전략으로서 제7광구 인근 수역에서 중국과 공동탐사에 착수함으로써 일본을 자극하거나 일본의 협정위반을 이유로 협정의 시행을 정지시킴으로써 유효기간을 연장한다. 2단계로 한중일 삼국이 합의해 동중국해 전 수역을 통할하는 한중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을 체결한다. '평화의 바다, 동중국해'는 장기간 중단상태에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재개하는 명분으로서 그리고 주요 의제로서 합당하다. 사실 한일대륙붕공동개발협정도 한일 간 대륙붕 경계획정 문제로 인한 분쟁을 평화적으로 관리해온 측면이 있다.

1단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2단계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협정이 유지된 상태가 종료된 상태보다 중국을 협상장으로 유인하는 데 더 유리할 것이다.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는 것도 좋지만, 기존 협정을 수정해 중국을 유인하고 중국이 이 협정에 가입한다면 그것은 금상첨화다.

검은 진주보다 평화가 우선이다. 모쪼록 동중국해가 한중일 사이의 갈등을 완화하고, 한국 외교의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좋은 기회가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