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윤 대통령의 변화와 기저효과

2023-10-23 00:00:01 게재
"가스라이팅을 당했나." 용산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떠도는 농담이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혼잣말처럼 툭 튀어나온다. 1년 전쯤부터 소속매체를 떠나 심심찮게 들렸다.

기자들은 취재원(취재처)을 제대로 이해하고 속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른바 '라포 형성(친밀감·신뢰감을 쌓아 긍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을 한다. 그 과정에서 취재원의 처지와 관점에 동화되는 경험도 한다. '인지상정'과 '불가근불가원' 사이의 긴장감은 기자에게 일상이다.

농담이라곤 해도 이런 일상이 윤석열정부 대통령실에서 '가스라이팅'이란 말로 험악하게 규정된 상황은 교훈을 찾아야 할 대목이다. 용산의 인식과 일반국민의 인식 사이에서 출입기자들이 느낀 괴리감, 인지부조화가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민은 이태원 참사 초 유가족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위로하던 윤 대통령이 왜 "책임이라는 건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한다"며 차갑게 돌아섰는지 공감할 수 없었다. "국민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다시 점검하고 잘 살피겠다"고 하더니 왜 돌연 '공산주의' '반국가세력' 비판에 열을 올렸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은 늘 '청년'과 '제복입은 영웅'을 강조했는데, 지난 여름 순직한 스무살 해병대원의 부모는 왜 아직까지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대통령실의 입장을 취재했던 출입기자들 역시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 윤 대통령은 '교훈' '변화' '소통' '반성' 등 연일 변화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자녀 학폭 논란이 제기된 김승희 의전비서관의 사직을 만류하지 않았고 김 행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도 '정리'했다.

사실 국민의 미움을 받는 사람은 쳐내고,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의도 정치권의 정석적인 처방법이다. 그것을 윤 대통령이 했다는 이유만으로 '대통령이 달라졌어요'라며 놀랍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면 이것은 일종의 비아냥이자 기저효과일 뿐이다. 이제 윤 대통령은 '이런 말도 할 줄 하네' '웬일로 이걸 안 밀어 붙이네'라는 냉소적 평가를 넘어서야 한다.

보궐선거 이후 논설·칼럼·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을 향한 조언들이 쏟아진다. '하기 쉬운 일'보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할 일'을 찾아 특유의 뚝심으로 실천해 나간다면 국민은 윤 대통령이 진짜 변했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마침 중동순방 귀국일인 26일이면 곧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윤 대통령이 만약 유가족들의 초청에 응한다면 진정성 있는 변화의 첫 단추가 될 수 있겠다.
이재걸 기자 clarita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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