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철학 정립을 기대한다

2023-10-26 11:04:17 게재
정유한 단국대학교 과학기술정책융합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근대화된 과학기술 역사는 길지 않지만 산업국가로의 도약을 위해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산업분야별 근대화된 연구기관이 꾸준히 설립됐다.

이렇게 시작된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는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최근 들어서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 국제특허(PCT) 3년 연속 세계 4위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기대해 볼 만한 과학기술적 성과들이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과학기술계 새로운 도전 과제에 직면

그러나 성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부족, 확보된 특허 활용 미흡 및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 쏠려 있는 과학기술 혁신역량 등 새로운 도전에 당면해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축적된 과학기술 지식이 전후에는 어떻게 활용되어야 좋겠는가?'라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질의에 버내바 부시와 할리 킬고어 간의 논쟁은 6년간이나 이어졌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자들의 자기 규율' 원칙에 기반한 국립과학재단(NSF) 설립이 추진될 수 있었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대통령 과학자문관이었던 존 마버거에 의해 '적정 연구개발투자는 어느 정도인지, 우선 투자 분야는 어디인지' 등에 과학기술계가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이후 2년여 간의 공론화 과정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의 과학화(SciSIP)를 위한 로드맵(SoSP Roadmap)이 마련됐다. 이는 미국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추진에 따른 논의의 근간으로 지금도 활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질문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전개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제시된 대안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분야의 담론 및 철학을 형성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는 된다. 과거 산업별로 분절된 추격형 혁신이 주효했던 시절에 이와 같은 논의는 선진국들만의 숙제였고 도전이라 생각되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R&D 투자 필요성은 점점 확대되고 있고, 정부연구개발예산의 투자 효율성 제고를 위한 통합적 R&D 정책 수립 요구 확대, 연구개발 특성을 고려한 연구자율성에 대한 합의 등 내일로 미루어온 숙제들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우리만의 과학기술혁신정책 철학 중요

혁신을 통한 열매가 비록 달콤하다 해도 혁신을 위한 과정은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최근 정부 연구개발예산 축소에 따른 과학기술계의 우려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물론 연구현장에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예산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를 통해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하겠으나, 논의 과정이 예산 확보에만 집중되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이번 계기를 통해 그간에 논의되지 못하였던 오래된 숙제들을 테이블 위로 다시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계는 물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중심으로 한 주요 R&D 수행부처 국회 학계와 일반 국민들이 참여하는 정책 공론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첫번째 논의 주제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한 우리만의 과학기술혁신정책 철학 정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미래 세대들이 더 나은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를 해결해야 할 시간과 마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