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소 잃고도 외양간 고치지 못하면

2023-11-29 10:53:16 게재
17일 발생한 지방행정전산망 마비사태로 온 나라가 혼란스러웠다. 특히 사고 이후 잇따라 발생한 각종 행정망 전산장애는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조달청 나라장터, 모바일 신분증 등을 자랑하던 우리정부 대표상품들의 가치가 훼손됐다. 소방청 긴급출동 시스템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에는 국민들의 불안감이 극대화됐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대형 행정전산망 장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3년 전에도 유사한 전산장애가 발생했다. 2020년 10월 14일 여성가족부 등 정부 24개 기관, 61개 대국민 서비스가 최대 26시간이나 중단됐다. 당시 사고 역시 이번처럼 노후장비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생겼다. 또한 제품을 생산한 민간업체 직원이 작업을 수행하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이중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지난 17일 발생한 행정전산망 장애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당시 이 사태가 행정안전부장관에게까지 보고됐지만 이렇다 할 후속조치가 없었다. 문제를 일으킨 기관은 상황을 축소해 보고했을 테고, 보고를 받은 행안부도 여론의 관심이 없었다는 이유로 쉬쉬 하고 넘어간 것이다.

이처럼 중대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사후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같은 문제가 재발한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늦었지만 국가전산망 장애를 사회재난 범주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이다. 사회재난으로 규정되면 자연스럽게 예방 대비 대응 복구 전 과정에 대한 세밀한 매뉴얼이 만들어진다. 또한 실제 전산장애가 발생할 경우 중앙사고수습본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소관부처는 물론 범정부적 대응기구가 구성돼 상황에 대처한다.

이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국무회의에서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예방접종 예약시스템, 사회보장시스템,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등 공공서비스 전산 시스템의 크고 작은 장애가 계속 발생해왔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고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윤석열정부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변명일 수 있다. 하지만 발언의 의도가 무엇이건 중요한 건 제대로 된 재발방지 대책을 만드는 일이다.

사상 초유의 행정전산망 사태로 전자정부 강국이라 자부했던 우리 자존심이 무너졌다. 정부는 물론 국민들의 상실감은 어쩌면 그 어떤 피해보다 클지 모른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우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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