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고향사랑기부 모금저조 누구 책임인가

2023-12-04 11:39:35 게재
박정현 전 대전시 대덕구청장

민선 7기 구청장이었던 사람으로서 고향사랑기부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고 이해되지 않는다. 이 제도를 도입한 취지는 지방정부가 지역의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모금하고 집행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의 역량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래서 고향사랑기부제도의 모금 당사자는 지방정부다. 따라서 이 제도는 자치분권과 균형발전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행정안전부의 간섭과 통제만 가득

현재 고향사랑기부제 운영에서 지방정부는 사라지고 행정안전부의 간섭과 통제만 보인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금의 고향사랑기부금 모금 상황을 '담당 공무원 인건비도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제도 시행 1년이 다 되어가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잡도록 하기 위한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모금이 안되고 있다. 지난 10월 말로 고향사랑기부금의 모금액은 340억원이다. 우리보다 제도를 일찍 시행한 일본이 첫해 740억원을 모금한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일본은 8조7000억원이 넘는 고향세를 모금했다.

우리나라의 근로소득자는 2000만명에 달한다. 이들 중 절반이 고향사랑기부제에 연 10만원을 기부한다면 모금액은 1조원이 될 것이다. 고향사랑기부금은 10만원을 내면 기부자에게 소득공제와 답례품으로 13만원을 돌려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근로소득자가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근로소득자는 고향사랑기부제 모금에 참여하지 않을까?

둘째, 행안부는 지방정부들에게 반강제로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 구축·운영하는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모금하도록 했다. 모금은 사람의 마음을 사서 그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모금 주체가 기부자에게 기부해야 할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기부자들이 자유롭고 손쉽게 기부할 수 없다면 "내가 모금하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가 된다. 그러니 모금이 제대로 되겠는가.

더구나 행안부는 지방정부와 아무런 상의도 없고 합당한 근거도 없이 고향사랑기부제 정보시스템을 한국지역정보개발원에 일방적으로 위탁하고 매년 구축·운영비를 내게 했다. 고향사랑기부제가 지방정부를 위한 정책인지 행안부 산하기관의 존립을 위한 정책인지 알 수 없다.

이제 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

셋째, 왜 지방정부를 위해 만든 제도가 지방정부를 소외시키는가. 최근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제1소위에서 고향사랑기부제 개선을 위한 첫 논의가 끝났다. 제도 시행 1년도 안된 상황에서 개선논의가 진행된다는 것은 제도 설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안타깝게도 핵심 내용인 지방정부의 자율적 모금 플랫폼 허용은 빠졌다. 이 개정안은 해당 상임위를 그대로 통과했다. 이런 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는 어느 지방정부와 어떤 내용으로 상의했는가?

전 구청장으로 지역의 문제를 지역과 상의 없이 결정하고 제도화하는 것에 자괴감마저 든다. 연 1조원을 모금해 지역의 문제를 지역 스스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진전시킬 수 있는 고향사랑기부제를 연 340억원 모금으로 전락시킨 정부와 국회는 이제 답해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느 기관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