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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서울의 봄'을 두려워하나

2023-12-21 12:01:26 게재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이 왜 안 나오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꽤 있는 모양이다. 인터넷에 많은 내용이 검색된다.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인 챗GTP는 그 이유를 1.번역의 문제 2.세계적 공감 부족 3.문학의 경제적 측면 4.교육 체계의 한계 5.한국문학의 정서와 취향 등 번호까지 붙여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이런 분석을 수긍하면서도 최근 한국의 다른 문화예술 분야, 이른바 'K-컬처'가 세계적 관심을 끄는 것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점을 느낀다.

한 원로 문학인을 구술하면서 좀 색다른 분석을 접하고 공감한 적 있다. 바로 분단이다. "6.25전쟁이 일어나니까 일본에서는 아시아에 노벨문학상이 온다면 한국이 될 거라고 그랬어. 왜냐하면 분단이라는 엄청난 글감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아무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잖아. 남과 북이라는 사슬에 갇혀서 말이지."

실제 우리 현대사는 그의 말 그대로다. 문단사만 보더라도 '분지' '오적' '노예수첩' 등 수많은 필화사건과 '청년문학가협회사건' '문인간첩단사건' 등 가공할 공안조작사건으로 얼룩져 있다. 800만부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조차 이적표현물이라는 극우단체의 고발로 11년간 법정공방을 벌이며 수난을 당했을 정도다.

필화와 공안조작으로 얼룩진 문단사

비단 문학만이 아니다. 그리고 과거의 일만도 아니다. 최근 정치사회 상황은 그의 말을 재삼 실감케 한다. 흥행 열기로 1000만 관객 고지를 눈앞에 둔 영화 '서울의 봄'에 색깔 공세가 퍼부어지는 것이 지금 우리 모습이다. 이미 역사적 판단과 사법적 단죄가 이뤄진 12.12군사반란의 전말을 다룬 것까지 보수단체와 극우 성향 유튜버들이 좌편향, 역사왜곡 영화로 단정한다. 이들은 '좌빨 왜곡 영화' '더러운 교육' 등의 극언으로 학생들의 단체관람을 막는 활동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14일 야당 단독으로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민주유공자법)과 관련한 정치공방은 더하다. 민주유공자법은 이미 관련 법령이 있는 4.19혁명이나 5.18민주화운동 이외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 부상 행방불명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등이 그런 경우다. 여당은 '운동권 셀프 유공자법' '운동권 특혜 상속법'이라며 법안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남민전사건이다. "활동자금을 마련하려고 무장강도 행각을 한 남민전 관계자들까지 전부 민주유공자 심사 대상"이라는 것이다. 1979년 자생적 공산주의 조직사건으로 세상에 알려진 남민전사건은 그후 민주화보상심의위와 진실화해위 등 여러 기관에 의해 민주화운동 관련성 및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가 인정된 사건이다. 2006년 최석진 박석률 김남주 등 29명에 대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고, 2022년 외곽 전술조직인 민투와 민학련 관련자 49명에 대해 위법하고 강압적인 수사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사실이 왜곡 또는 조작됐다고 판단했다.

진보학계에서는 남민전을 1970년대 운동의 일부를 구성하는 비합법적 지하조직운동으로 규정한다. 나아가서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이념적 지평을 뛰어넘어 1980년대 민족해방운동적 인식의 기초를 예비한 운동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민전에 대한 법적 행정적 학술적 판단은 민주화운동 쪽으로 기우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회 분위기는 여전히 접점을 찾기가 불가능할 정도다.

12.12반란세력과 86세대, 원인과 결과

남민전이 이른바 1980년대 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영화 '서울의 봄'에 등장하는 12.12반란세력은 그런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이 86세대다. 그들은 남민전의 지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급진적인 전술전략을 추구했고, 신군부는 그들이 그렇게 싸울 수밖에 없도록 폭력과 폭압이라는 원인을 제공했다. 결국 86세대는 6월항쟁을 통해 승자가 됐다.

18일 86정치인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구속됐다. 여당과 언론은 '86세대 정치인의 몰락'이라고 일제히 비난했다. 86세대가 오래 사회의 중추세력을 이루며 기득권의 상징처럼 됐다 해도 그것을 빌미로 역사를 되돌리고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희생의 의미를 폄훼하는 것은 부당하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