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납품대금연동제 정착을 기대한다

2024-01-05 12:07:21 게재

중소하청업계의 오랜 숙원이자 한국경제의 미래가 걸린 납품대금연동제가 보다 강화돼 올해부터 본격 시행되기 시작했다. 원자재가격이 변동할 경우 납품단가에 자동 반영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제도는 지난해 말까지 계도기간으로 설정돼 작년 10월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정부는 계도기간이 끝나자 2일 국무회의를 열고 연동제 탈법행위의 입증 책임을 하청기업에서 원청기업으로 바꾸고 불공정거래시의 징벌적 손해배상액도 최대 3배까지 높이는 등 제도를 강화했다.

국제 원자재값 등락은 불가항력적이다. 그래서 중소하청업체들은 가격부담을 원청과 하청업체가 적절하게 분담하는 게 합리적이라면서 지난 2008년부터 납품단가연동제 법제화를 요구했다. 그러나 주로 대기업과 중견기업들로 구성된 원청업체들은 이것이 '계약 자유의 원칙'을 훼손하고 시장 효율성을 저해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면서 강력히 반대, 번번이 입법이 무산됐다.

하지만 2022년 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제 원자재가격이 환율과 함께 동반 급등하면서 하청업체들의 처지가 무척 어려워지자 여야 후보 모두가 이 제도의 도입을 공약, 법제화에 탄력이 붙었다. 당시만 해도 원청업체들의 '납품단가 후려치기'가 극심, 2021년에 국제 원재료가격이 전년 대비 평균 47.6%나 급등했는데도 납품대금 상승률은 고작 10.2%에 그쳤다.

연동제 시행돼도 '납품단가 후려치기' 막는 데 한계

대기업들은 통상 하청업체를 협력업체라고 지칭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문화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약자에게 냉혹하고 후진적이다. 중소하청업체들이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도 원청 대기업들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 하청업체들을 착취하면서 여유를 부려온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수는 2021년 기준, 전체 기업의 99.9%나 된다. 근로자도 전체의 80.9%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그런데도 0.1%에 불과한 대기업이 기업 전체 매출액의 53.2%를 가져간다. 그러니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가 날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평균소득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6년 대기업의 44.7%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대기업 소득의 절반을 넘은 적이 없다. 그러니 대기업 앞에는 취업하려는 수많은 대졸 젊은이들이 줄을 선 반면에 중소기업은 구직자가 없어 외국인 없이는 가동조차 힘든 상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대기업의 납품단가인하 요구가 있더라도 중소기업들은 하청 물량 증대로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품질로 승부하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엔 이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를 타개할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현행 하도급법과 상생협력법에는 원자재가격 등 공급원가가 변동됐을 때 하청기업이 납품대금의 조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원청사업자 눈치를 봐야 하는 하도급 업체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납품대금 인상을 요청한 기업은 고작 4%에 불과하다.

문제는 연동제가 시행되기 시작했는데도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막는 덴 한계가 많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연동제 대상이 공급원가에서 주요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는 계약으로 한정돼 있는 데다 1억원 이하 소액계약, 거래기간 90일 이내의 단기계약에는 적용이 안되기 때문이다. 2021년 대한전문건설협회 실적신고에 따르면 전체 전문공사계약 중 1억원 미만의 공사계약이 49.5%, 90일 이내 계약이 44%나 된다.

연동제 적용 범위도 문제다. 현재 연동제 대상은 원재료에만 한정됐다. 하지만 금속·주물·열처리 등 뿌리산업은 전기료가 제조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30%나 된다.

제도 안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보완 필요

납품대금연동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고 한국경제가 재도약할 수 있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 간의 공급망 갈등 고조와 자원무기화로 인해 앞으로 원자재가격은 기업들을 더욱 옥죌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계도기간도 끝난 만큼 제도를 세심하게 살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원가분석 역량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중간재의 경우 가격 기준지표가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제도 보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울러 제도의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금액을 소액으로 쪼개는 등 탈법행위를 저지르는 대기업을 엄하게 다스리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박현채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