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김정은 대남정책 전환은 '대미메시지'

2024-01-19 11:33:38 게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선언하고 이를 북한 헌법에 명시하겠다고 했다. 또 현행 헌법에 있는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표현도 삭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예고한 것으로 파장이 적지 않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체제에 대한 근본 규범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이 집약돼 있다. 헌법에서 대한민국을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민족 개념을 빼겠다는 건 지난 70년 이상 유지해온 남북관계의 틀거리를 폐기하겠다는 뜻이다. 민족 논리가 없어지는 만큼 당연히 통일 논의도 불필요해진다. 남북기본합의서도 무용지물이 된다. 남북관계는 민족간 특수관계에서 적대하는 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 간 대립·대치관계로 치환된다.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 철거 지시는 이를 구체화한 행동이다. '조국통일 3대 헌장'은 7.4 남북공동성명(1972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1980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1993년)이다. 조부와 부친, 선대의 통일노선을 모두 청산하겠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을 한 최고인민회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의 폐지를 결정했다. 최고인민회의가 우리 국회격이란 점에서 국가기관의 처리를 이행한 것이다. 조만간 개최를 예고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회의에서 당 기구인 통일전선부 폐기 결정이 뒤따를 전망이다.

김 위원장의 대한민국 적대화 연설은 그 초점을 남북관계에 맞추고 있지만, 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한국은 더 이상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대미 메시지란 생각이 든다.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부르며 교전국으로 규정한 것은 정전협정의 시각이다.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는 국제연합군 총사령관과 북한군 최고사령관, 중공인민지원군 사령원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빼고 정전협정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의 문제로 한반도 문제에 대처하겠다는 이야기다.

한국을 민족간 특수관계를 명분으로 한반도 문제에 끼어들어 북한식 접근을 방해하는 행위자로 보고 한반도 판에서 완전히 밀어내겠다는 의중이 읽힌다.

앞서 단행된 핵무력 정책의 헌법화까지 고려하면, 이번 헌법 개정 발언은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차기 미국 행정부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북한의 이같은 행보 배경엔 한미일-북중러간 진영 대결로 틀이 짜인 신냉전 구도가 자리잡고 있다.

당장 9.19 군사합의 폐기를 선언한 북한이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함에 따라 군사적 긴장과 충돌 가능성이 커져도 제어장치가 없는 조건이다. 우리 정부에게 상황을 관리할 의지와 능력은 있는가.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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