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단통법 폐지와 이용자 보호

2024-02-26 13:00:01 게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규제개혁을 주제로 한 민생토론회에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폐지를 언급했다. 이후 대통령실은 국회 입법이 필요한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시행령을 개정해 단말기 가격인하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단통법은 일부 가입자에게만 과도하게 지급된 보조금을 모두가 차별없이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14년 도입됐다.

단통법에 대한 논란은 지난 10년 동안 계속돼왔다. 보조금이 투명해져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게 됐지만 발품을 팔아 고가의 휴대폰을 싸게 샀던 사람들은 보조금이 줄어들어 불만이 커졌다.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한 보조금을 주어야 하는 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줄였기 때문이다. 단통법 폐지로 고가의 단말기를 싸게 살 수 있을지 사람들의 관심이 크다.

단통법 폐지에 따른 경쟁 활성화 효과 제한적

단통법은 단말기 보조금 상한을 설정해 과다한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고 이용자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단말기별 출고가, 보조금 등 지원금 수준과 거래조건을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해 누구나 이동통신서비스를 동일한 조건으로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면 약정기간 동안 이용자가 내는 통신요금으로 이를 회수해야 한다. 따라서 통신사가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경우 약정기간을 늘리거나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을 요구한다. 과거 이동통신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절에는 통신사가 단말기 보조금을 많이 제공하더라도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가입자를 유치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이동통신시장 성장률은 연 3% 정도로 성숙기에 진입했다. 최근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률은 5~7% 수준으로 수익성도 높은 수준이 아니다. 또한 정부의 강력한 요금완화 정책으로 3만~4만원대 5G 중간요금제가 출시돼 가입자당 평균수익(ARPU)은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사들의 보조금 지급여력은 더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더 주목할 부분은 스마트폰이 대세가 된 이후 단말기 가격이 지속적으로 올랐다는 점이다. 2014년 애플 아이폰6 플러스의 출고가가 50만원 수준이었지만 2023년 아이폰15 프로 플러스의 출고가는 200만원 수준으로 10년 동안 4배가 올랐다. 과거에는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애플 등이 국내 단말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했으나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애플의 과점체제가 됐다.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제조사 입장에서는 단말기 가격을 낮추거나 장려금을 더 많이 지급할 유인이 없다. 따라서 단통법이 폐지되더라도 보조금 경쟁을 통한 대폭적인 단말기 가격인하는 기대하기 어렵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도 단통법 폐지가 이통사들의 영업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단통법 폐지하더라도 이용자 보호는 중요

단통법이 폐지되면 대리점이나 판매점의 15% 추가지원금 한도가 없어지면서 소비자에 따라 지원금을 차별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보조금에 대한 공시의무가 사라지면 대리점이나 판매점은 소비자의 나이 등 정보접근성에 따라 보조금을 차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시적으로 특정 지역에만 보조금을 지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렴한 휴대폰을 사기 위해서는 성지를 찾아 헤매야 할 수도 있다. 아울러 통신사들은 매출 증대를 위해 프리미엄 요금제에 더 많은 보조금을 제공할 것이고, 가입자들은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 불필요한 고가요금제나 부가서비스에 가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경쟁을 통해 시장기능을 활성화하려면 단통법은 폐지하더라도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이동전화서비스와 단말기를 선택할 수 있도록 보조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자급제 단말기와 제조사의 단말기 직접 유통을 확대하고 양질의 중저가 단말기가 더 많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김범준 가톨릭대 교수 회계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