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세금’ 정비했지만…혜택은 기업에, 국민편익은 ‘찔끔’

2024-03-28 13:00:24 게재

부담금 18개 폐지·14개는 감면

63년 만에 부담금 대대적 정비

“2조원 국민·기업 부담 경감”

세수감소 부담 … 사업축소 불가피

정부가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 중 일부를 폐지·감면한다. 사실상 63년 만에 첫 번째 일괄정비다. 정부는 개편 이유로 ‘국민 체감 부담 완화’를 내걸었다. 하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푼돈 수준이다.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등 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고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게 이번 개편의 주된 목적으로 읽힌다.

2조원대에 달하는 세수감소 부담도 우려된다. 정부는 ‘기금지출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결국 복지축소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이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정부가 이미 수십조원대 지역개발을 공약한 바 있어 향후 재정상황도 우려스럽다.

국민·기업 부담 완화를 위해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오른쪽 네 번째)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민·기업 부담 완화를 위한 ‘부담금 정비 방안’에 대해 관계 부처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절반은 전력부담금 = 기획재정부는 27일 현행 총 91개 부담금을 전수조사해 부담금 항목 18개를 폐지하고 14개를 감면한다고 밝혔다. 올 하반기에 법령 개정이 완료되면, 부담금 수입이 약 2조원 준다.

부담금은 특정한 공익사업의 수행을 위해 공공주체가 조세 외에 부과하는 금액으로 준조세로 불린다. 2022년 말 기준 91개 항목에서 22조4000억원 규모로 운용 중이다.

이번 방안은 윤 대통령이 지난 1월 부담금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지 두 달여 만에 나온 것으로, 정비 대상 부담금 91개 중 18개가 폐지되고 14개가 감면 대상에 포함됐다.

감액분 중 절반 가까이(약 9천억원)는 전기요금 관련 부담금 축소분이다. 전기요금의 3.7%를 사용자에게 부과해온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요율이 2년에 걸쳐 3.2%, 2.7%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4인가구는 전기료가 연간 평균 8000원 줄어든다. 기반·차세대 공정기술과 관련된 ‘뿌리업종’ 기업은 연간 62만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하지만 전기 수요처의 특성을 따지지 않고 일괄적으로 요율을 인하하기로 한 탓에 그 혜택은 산업용 전기를 많이 쓰는 사업장을 둔 대기업에 집중된다. 이번 조치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얻는 혜택은 약 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정부 협의과정에서 혜택대상에서 대기업을 제외하는 방안도 나왔지만, 일괄적용키로 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건설관련 부담금 폐지 많아 = 금액으로 보면 건설 경기 부양을 겨냥한 부담금 정비 폭도 크다. 학교용지부담금과 개발부담금에서 약 6600억원이 준다. 수혜자는 대부분 건설 사업자와 시행사다.

우선 분양 사업자에게 분양가의 0.8%(공동주택 기준)를 물리는 학교용지부담금은 폐지된다. 개발시행 사업자에게 개발 이익의 20~25%를 부과하는 개발부담금도 올 한 해만 한시적으로 수도권은 절반을, 비수도권은 전액 감면한다. 기재부는 “인구 감소로 새로운 학교용지 필요성이 점차 떨어지는 점과 부진한 건설 경기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환경개선부담금 감축도 논란이다. 감축 대상을 경유 화물차를 소유한 영세 자영업자로 한정했지만 환경 정책과 엇박자라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중소기업에 한해 깎기로 한 폐기물처분부담금 조정도 도마에 오른다. 임성희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장은 “환경 분야 부담금은 기본적으로 오염자 부담 원칙이 적용된다. 기업 부담 완화란 이유로 줄여주면 오염 원인에 대한 규명과 책임도 상쇄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부담금 조정 폭은 상대적으로 작다. 출국자에 대해 공항에서 1만1000원씩 받던 출국납부금은 7000원으로 낮아지며 면제 대상은 기존 만 2살 미만에서 12살 미만으로 확대된다. 여권 발급비는 3000원 내린다.

◆재원충당 대책은 = 실효성 논란도 있다. 영화관 입장권 금액의 3%씩 관람객에게 걷던 부과금의 감면 폭이 소액(입장권 1만5000원 기준 450원)인 탓에 입장권 가격 조정으로 이어질 공산은 크지 않다. 부담금 감면 혜택이 소비자가 아니라 영화관 운영 기업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2조원대 부담금이 없어지는데 별도의 재원 충당 대책도 없다. 줄어든 부담금 일부를 정부 재정으로 메꿔야 할 가능성도 커졌다.

정부는 이번 정비를 통해 연간 2조원의 부담금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비 대상 부담금 32개(9조6000억원)의 21% 수준이다. 이처럼 다수 부담금이 폐지 또는 감면되면서 부담금을 재원으로 한 사업들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별도의 재원 마련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부담금만 폐지해 기존 충당금부터 다른 기금의 전용, 일반 정부 재정 투입까지 가용한 방안이 모두 동원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담금 감면에 따른 재원 부족분을 일반 재정에서 끌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경기침체로 약화된 재정 여건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추가 재정비 주장도 제기 = 이 때문에 앞으로 정비 방안 시행을 위한 법과 시행령을 개정할 때 대기업 특혜와 재원마련 방안, 환경보전 등 문제가 제기된 사안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의 부담금 정비 방안 분석’ 자료를 통해 ”부담금 정비 방안은 감세 정책의 또 다른 창구“라며 ”부담금 경감액의 절반 이상이 자자체 귀속분“이라고 지적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기업 부담을 줄여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정부의 일관된 주장이었는데 이러한 정책 기조가 조세를 넘어 부담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개발부담금과 농지보전부담금, 장애인고용부담금, 대체산림자원조성비 등은 부담금을 부과해 개발을 억제하고 농지를 보전하고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는 부담금의 긍정적인 요소인데 이를 없애거나 감경하는 것은 기업이 수행하는 공익사업에 대한 재정 책임을 완화 시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자체 재원이 축소될 것이라고 우려도 나왔다. 나라살림연구소는 ”기재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광역·기초자치단체에 귀속 부담금의 규모는 2조5357억원인데 이번 정비 방안에 포함된 주요 4개 부담금의 경감액은 1조245억원으로 최소 52.2%“라며 ”경기 침체와 부동산 경기 하락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워진 지자체의 재정난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정부는 이번 정비로 전체 경감액이 1조9653억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가운데 지자체에 귀속되는 부담금의 경감액이 절반을 넘는다는 점에서 부담금 정비 방안이 지역에 대한 재정적 압박의 수단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 관련 정책이 후퇴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나라실림연구소는 ”환경개선부담금에서 경유차에 부과하던 부담금을 50% 인하하고, 폐기물 처분부담금의 감면 기준을 확대한 내용이나, 강력한 온실가스인 HFC 가스에 부과하는 특정물질 제조수입부담금의 요율을 인하하는 등의 조치는 사실상 기후위기 시대를 거스르는 정비“라고 우려했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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