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수출모델 전환 고민할 때다

2024-04-01 13:00:02 게재

수출이 산뜻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2월까지 수출액은 1072억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11% 증가했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쌍끌이로 내용적으로도 만족스럽다. 무역협회가 전망한 금년 수출액 6800억달러 달성이 당초 어렵게 보였지만 이제 가시권에 들어왔다. 수출 호조에 고무된 정부는 수출 목표액을 7000억달러로 과감하게 높이고 범정부적으로 수출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추진력이 지속가능한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현재 세계 무역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전망을 금년 1월에 수정했는데 세계교역량 증가율은 3.5%에서 3.3%로 하향 조정하면서 세계 성장률은 2.9%에서 3.1%로 상향했다. 통상환경 악화로 세계무역은 줄어도 미국과 중국 등 몇몇 나라는 성장률이 더 높아지는 ‘무역없는 경제성장’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무역없는 성장’ 암울한 경제 패러다임 확산

돌이켜보면 2차대전 이후 무역이 성장을 견인하는 세계화 시대는 50년의 고성장기를 이끈 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2018년 미중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저성장의 지정학 시대가 고성장 세계화 시대를 대체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교역량 증가율을 경제성장률로 나눈 교역탄성치가 잘 보여준다. 세계 성장률 3.7%, 교역량 증가율 8.8%였던 1994년의 교역탄성치는 2.5였다. 성장률 5.4%였던 2006년 교역탄성치는 1.7이었으나 성장률 3.4%였던 2012년 교역탄성치는 0.9며 예상성장률 3.1%인 2024년 교역탄성치는 1.1로 나타난다. 성장률과 교역탄성치는 정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데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상황에서는 교역탄성치가 1에 근접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통상환경은 미국의 최대 수입국이 2023년 중국에서 멕시코로 바뀌면서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에 우회수출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멕시코 수출은 2021년 50% 2022년 15% 증가했다. 미국은 조만간 우회수출 규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저성장과 지정학 시대의 도래, 글로벌 분절화, 통상환경의 불확실성 증대 등이 중첩되는 상황에서는 교역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수출 증대 노력의 효율 저하가 불가피해지므로 수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급하다. 한국경제에서 수출은 경쟁력 개발과 역동적 산업의 유지에 핵심적 역할을 하므로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저성장의 지정학 시대에서도 수출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한국형 새로운 수출모델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고부가가치 차별화 제품 수출모델로 전환해야

현재의 수출모델을 가격경쟁력에 기반한 물량 증대 수출모델이라고 한다면 필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방향은 고부가가치 차별화 제품 수출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국에 필요한 차별화 제품을 수출하므로 수입장벽에 걸리지 않고 수출단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어 물량은 적더라도 단가상승을 통해 수출금액 증가와 무역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 흑자의 다과에 따라 환율하락, 원화가치상승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1996년 외환위기 직전에 정부가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한 적이 있는데 새 수출모델의 전제가 되는 산업혁신 기반을 다지지 않고 정책을 밀고 나가 실패하고 말았다.

윤석열정부는 7000억달러 수출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되 나홀로 수출전략이 아니라 디지털 그린 현업 3대 혁신을 통해 산업의 고부가가치화와 차별화를 실현하는 산업대전환 전략과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혁신 기반 차별화 수출모델로 전환하게 되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에 집중하는 중국의 강력한 추격과 경쟁력 도전에도 능히 대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현정부의 7000억 달러 수출정책이 산업대전환의 새로운 혁신전략과 병행해 추진되기를 기대한다.

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