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통규제, 이제는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2024-04-09 13:00:01 게재

다양성은 아름다운 것이다.

다양성이 아름다운 이유는 더 오랜 생명력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지속해 온 대형마트 규제는 다양성을 지켜주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 유통산업 ‘발전’법이라는 명칭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변화하는 유통환경 속에서 경쟁과 균형의 장기적 영향력을 검증하지 않은 채 ‘발전하는 업태를 규제하면 다양성이 유지될 것’이라는 순진한 신념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불편을 강제하고 전체 유통산업에서 발전하는 업태로 낙인찍히면 되레 규제대상이 된다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을 뿐이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윈윈’하는 파트너

이런 의미에서 정부가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결정은 환영할 만하다.현행법에서 허용가능한 수준에서 그간 금지했던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평일로 전환하고 영업제한 시간내 배송금지를 철폐하겠다는 진행과정은 소비자 복지를 개선하고 우리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계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공휴일 휴무가 평일로 바뀌면 주말 쇼핑에 나섰다가 헛걸음을 했다는 소비자 불편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주말 유동인구가 늘어 대형마트 인근 상권에도 활력을 불어 넣는다.

실제 대구시가 광역시로는 처음으로 의무휴업일을 공휴일에서 평일로 전환하면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매출이 7% 늘었다. 슈퍼마켓과 음식점 매출도 20% 증가했다.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긍정적 효과를 미쳤다는 의미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서로를 잠식하는 대결 상대가 아니라 상호 윈윈(win-win)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대구시의 성공적인 실험에 힘입어 충북 청주시, 서울시 서초구 동대문구에 이어 부산시도 조만간 대형마트 휴업일을 평일로 바꿀 예정이다. 하지만 의무휴업일 평일 확산에는 한계가 있다. 이해당사자간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의를 한 경우에는 기초자치단체장이 의무휴업일을 평일이나 특정 날짜로 지정할 수 있지만 시장 상인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어 합의가 쉽지 않다.

의무휴업일 평일전환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선 법개정이 근본적인 처방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도와 영업시간제한 규제완화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수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열쇠는 국회가 쥐고 있다.

유통산업 발전 위해 국회가 나설 차례

현재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국회의 대응방식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각주구검(刻舟求劍)’이 아닐까 싶다. 초나라 사람이 배에서 검을 물속에 떨어뜨리고 그 위치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배가 움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검을 찾는데서 유래한 것으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되고 해외 온라인 유통기업을 통한 직접구매가 일반화된 상황이다. 환경변화에 둔감한 산업생태계는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산업간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화되고 고물가와 고금리로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전반적인 유통산업 규제에 대해 소비자 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산업생태계 발전을 제고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입법부는 변화를 직시하고 디지털 시대에 걸맞는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국민과 기업의 외침에 따라 유통산업 전체의 발전이라는 대승적 관점에서 입법부가 나서야 한다. 국회가 응답할 차례다.

이동일 세종대 교수

한국유통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