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수시 합격생 릴레이 인터뷰
황시현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강원 양양고)
화장품 연구원에서 환경 기술 개발자로 꿈 찾아준 ‘체인지 메이커’
중학생 때까지 알파인 스키 선수로 활약했지만, 허리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접어야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부족했던 학업을 보충하려니 몇 배의 시간을 더 쏟아야 했다.교과 공부에 조금씩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명료한 과학과 수학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강원 양양고의 수업량 유연화 프로그램으로 마련된 ‘체인지 메이커’ 프로젝트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공 계열을 희망하는 친구들과 모여 3학년 때 본격적으로 탐구한 주제는 ‘수질 오염으로 인한 토양 오염 심화 문제’. 대표적 관광지인 양양에 점점 늘어나는 쓰레기들로 환경 문제가 심화된다는 생각에 우리 지역의 정화 체계는 충분한지 궁금해졌다. 지역 내 폐수 처리장을 견학해 알게 된 정화 공정을 직접 실험으로 구현해보기도 했다. 수시 원서 접수를 마치고 나서도 아쉬움이 계속 남아 가동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폐수 정화 기계 구상에 도전했다. 수시 면접 자리에서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됐다. 서울시립대 화학공학과 황시현씨의 꿈을 환경 기술 개발자로 바꿔준 ‘체인지 메이커’는 수시 합격의 일등공신이었다.
<통합과학>, 너 왜 이렇게 재미있니?
‘어떻게 모든 부분이 다 재미있지?’
1학년 때 <통합과학>을 배우면서 든 생각이다. 과학 네 과목 중에서도 특정 과목을 선호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시현씨에게는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이 서로 연결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에서 접하는 현상들의 해답을 주는 과목이라고도 느꼈다. 과학 Ⅰ과목 네 개를 모두 선택한 이유다.
“그중에서도 특히 화학이 좋았어요. 물리학과 생명과학, 지구과학은 있는 그대로를 연구하는 반면 화학은 무언가를 결합시키고 반응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은 많은 친구들이 중학생 때부터 조금씩 화장을 하기 시작하잖아요. 저도 해봤다가 얼굴에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와서 고생한 적이 있었어요. 막연하게 화장품 연구원이 되어서 이 문제를 개선해보면 어떨까 싶었는데, 그래서 더 화학에 끌렸는지도 모르겠어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려면 수학과 과학을 기본적으로 충실하게 이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교 지정 과목인 <확률과 통계>를 비롯해 <미적분>과 <기하>를 모두 선택했다. 일반선택 과목으로 석차등급이 산출되는 <미적분>은 신청자가 39명에 불과해 성적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게 사실이다.
“공부를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수시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원점수 94점이어도 3등급이라는 숫자가 찍힐 수밖에 없었지만, 학생부종합전형은 이런 조건을 고려해 평가해준다는 얘기를 믿기로 했죠. <물리학Ⅱ>와 <화학Ⅱ>도 처음엔 어려울 것 같아 겁을 먹긴 했는데, 괜찮더라고요. Ⅰ과목에서 이론적인 바탕을 배웠다면, Ⅱ과목에서는 실생활 적용 사례들을 주로 배우니 더 재미있었거든요.”
양양의 수질 오염 문제, 폐수 처리는 충분히 되고 있을까?
‘변화를 만드는 사람’을 뜻하는 ‘체인지 메이커’ 프로젝트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1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나와 학교, 지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보는 이 프로젝트에서 1학년 때 탐구한 ‘교내 핸드폰 수거 규정 문제’를 시작으로 2학년 때는 ‘전동 킥보드 공유 서비스로 인한 안전 문제’를 주제로 잡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 우리가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주변의 문제를 해결해본다는 취지에 흥미를 느껴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활동이다.
3학년 때 이공 계열을 희망하는 친구들과 팀을 이뤄 잡은 주제는 ‘수질 오염으로 인한 토양 오염 심화 문제’였다. 설악산과 동해, 남대천이 함께 있는 양양의 특성상 거리나 관광지에 버려진 쓰레기들로 인해 수질이 오염되고, 이는 다시 토양 오염으로 이어질 거라는 문제의식이었다.
“처음 생각한 원인은 증가하는 수질 오염원에 비해 부족한 정화 체계였어요. 진위 여부를 확인해보고 싶어 양양의 포월 농공단지 폐수 처리장에 연락해 직접 견학할 기회를 만들었어요. 폐수 처리 과정과 공정, 공장의 구조 등을 배울 수 있었는데요. 우선 1차 화학 공정에서 침전을 일으킬 용액과 오염수를 넣어 큰 오염 물질을 거른 뒤, 2차 미생물을 이용한 생물 공정 단계에서 미생물이 인과 질소를 없애주는 탈질산화 과정을 거쳐 물을 정화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공장 가동 비용이 한 달에 4천만 원 넘게 든다는 사실도 접했고요.”
폐수 처리장에서 배운 공정을 확인해보기 위해 학교에 돌아와 실험을 설계해봤다. 찰흙과 주방세제로 오염수를 만든 뒤 침전 원리를 이용하기 위해 응집제 역할을 해줄 수산화나트륨을 용매로 사용했다. 이 용액을 학교 화단에 뿌린 뒤 충분히 건조시켜 다시 물에 용해해 PH 측정기로 확인해봤다. 중성으로 나온 결과를 보며 생활하수에 적용 가능한 공법임을 체감했다. 다만 비싼 가동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중소기업이 정화 과정 없이 방류할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마지막 단계인 ‘소셜 벤처 창업’ 아이디어로 수질 측정과 개선을 동시에 하는 기업을 만들어 비용 부담을 줄여보자고 제안하며 활동을 마무리했다.
아쉬움 끝 구상한 수질 정화 기계,
면접장에서 빛을 발하다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견학도 가고, 열심히 실험도 해봤지만 뭔가 제대로 마무리를 못한 느낌이었다. 수시 원서 접수도 끝난 시점이었지만, 혼자서라도 기계를 설계해보고 싶었다. 마침 <생명과학Ⅰ> 수업에서 배운 미세조류가 떠올랐다.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발생시키고, 이산화탄소를 소비하는 미세조류에서 추출한 오일을 이용해 바이오디젤, 바이오에탄올 등을 생산할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들고, 효율도 좋아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다는 것을 친구와 함께 공부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질 정화 기계의 베이스로 미세조류를 사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시작이었어요. 한데 기계를 돌릴 때 쓸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려면 미세조류를 부셔야 하는데, 정작 정화 역할을 해야 할 미세조류가 파괴된다는 단점이 있겠더라고요. <생명과학Ⅰ> 수업에서 배운 유전자 분석 기술인 PCR 기술을 이용해 미세조류 유전자를 복제하면 파괴된 만큼 다시 증식시킬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문제는 이렇게 하면 과정이 굉장히 복잡해진다는 점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물리학Ⅱ>에서 배운 시스템 반도체를 떠올렸어요.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폐수가 어느 정도 정화되면 미세조류를 파괴해 기계를 돌릴 연료를 생산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 가동 비용을 줄이는 거죠. 과학에서 배운 개념을 총동원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고민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점은 수시 면접장에서 빛을 발했다. 수질 정화 기계를 왜 만들고 싶었는지, 어떻게 설계했는지, 무엇을 이용할 것인지, 시스템 반도체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폭풍 질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애정을 갖고 해온 활동이었기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체인지 메이커를 계기로 환경을 위한 기술에 관심이 커졌어요. 화학공학과에 지원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고, 산업 부산물을 제거하고 활용하는 환경 기술을 연구하겠다는 꿈도 새롭게 생겼고요. 1, 2학년 때는 관심 있는 학교 수업과 활동에 이것저것 열심히 참여하면서 씨를 뿌렸다면, 3학년 때는 지금까지 배웠던 내용, 해왔던 활동을 기반으로 무엇을 좀 더 해볼 수 있을지 계속 생각하면서 수확을 했던 과정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진짜 하고 싶은 일, 전공도 찾을 수 있었죠. 후배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취재 정애선 소장(내일교육 부설 교육정책연구소 헤리티지내일) as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