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원 확보 위한 빅테크기업 경쟁 치열
재생에너지·원자력 등에 거액 투자 … ‘천연가스 업계가 전력수요 급증 수혜’ 분석도
지난달 발표된 웰스파고의 분석에 따르면 2030년 미국 전력수요는 현재보다 2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부상이 미국내 반도체·배터리 제조 확대와 차량의 전기화와 맞물리고 있다. 웰스파고는 2030년 미국 AI 데이터센터에서만 약 323테라와트시(TWh)의 전력수요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한다. AI로 인한 예상 전력수요는 현재 뉴욕시의 연간 전력소비량인 48테라와트시보다 7배나 많은 양이다. 골드만삭스는 10년이 지나면 데이터센터가 미국 전체 전력소비의 8%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가운데 더 많은 컴퓨팅파워를 원하는 빅테크들이 치열한 투자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 따르면 구글 모기업 알파벳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세계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대기업들은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총 400억달러를 투자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증가하는 AI 워크로드를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센터에 투자됐다.
인공지능·데이터센터에 전력수요 급등
빅테크의 자본지출은 역사적으로 자본지출이 엄청나기로 유명한 에너지산업과 비견된다. 클라우드 사업부문은 없지만 데이터를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 제국을 운영하고 있는 메타는 지난달 AI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올해 자본지출이 약 4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거대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가 계획하고 있는 500억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금액이다. MS는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할 가능성이 높다.
AI에는 엄청난 양의 처리능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처리능력에는 막대한 양의 전기가 필요하다. 이달 2일(현지시각) 미국 최대 유틸리티 중 하나인 도미니언에너지의 최고경영자 밥 블루는 “데이터센터 개발자들이 정기적으로 우리에게 기가와트(GW) 단위의 전력을 공급해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도미니언의 총 설치용량은 34GW다.
JP모간체이스에 따르면 아마존의 클라우드부문(AWS)과 알파벳 메타 MS가 2022년 콜롬비아 전체와 맞먹는 90테라와트시의 전력을 소비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그해 11월 챗GPT가 AI혁명을 일으키기 전의 상황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6년 전세계 AI와 암호화폐 관련 데이터센터가 2022년의 2배가 넘는 800TWh 이상을 소비할 것으로 예측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30년 미국 전력소비에서 데이터처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7.5%로, 현재보다 3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전력수요 급증은 아마존과 구글 MS 메타에게 거대한 도전과제가 됐다. 이 기술기업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을 공급하기로 약속했다. 자금력이 풍부한 이 대기업들은 이미 친환경 ‘전력구매계약’의 가장 큰 주역으로 등장했다. 나아가 직접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달 1일 MS와 세계 최대 인프라 투자자 중 하나인 브룩필드는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 10.5GW의 재생에너지 용량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MS는 2030년까지 전기사용량의 100%를 탄소배출 제로에서 공급받겠다는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1GW의 풍력 또는 태양광 용량을 추가하는 데엔 약 10억달러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해가 비치지 않거나 바람이 불지 않을 때다. 데이터센터는 일정한 속도로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 대기업들은 데이터 처리를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 3월 알파벳이 공동설립한 인프라 기술회사 ‘사이드워크 인프라 파트너스’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 있으면서도 주변의 다른 기기와 에너지를 교환할 수 있는 ‘마이크로그리드’, 배터리, 고급 소프트웨어의 조합을 통해 AI 모델학습처럼 시간에 덜 민감한 작업을 유휴 수요기간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포함된다. 사이드워크의 설립자 중 한명인 조나단 위너는 이같은 데이터센터가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같이 에너지 제약이 심한 지역에 먼저 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빅테크의 전력 관심분야는 재생에너지만이 아니다. 지난 3월 AWS는 펜실베이니아에 위치한 960메가와트(MW) 규모의 데이터센터에 전력을 공급 받는 대가로 인근 원자로에 6억5000만달러를 지불했다. MS는 풍력과 태양열을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해 미국 최대 원자력발전 사업자인 칸스털레이션 에너지와 계약을 맺어 버지니아에 있는 데이터센터에 원자력 기반 전력을 공급 받기로 했다. 두 회사는 또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유망한 원자력기술인 ‘소형모듈형원자로(SMR)’ 사업 공동추진을 검토하고 있다.
구글은 지열에너지에도 뛰어들었다. 심부지열발전 스타트업 ‘퍼보’와 차세대 지열발전을 개발하기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 이 신생기업은 셰일산업에서 활용하는 수압파쇄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지열정보다 훨씬 깊은 곳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퍼보 등의혁신으로 2050년 미국의 지열 발전량을 현재보다 약 20배, 90GW 이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상한다.
챗GPT의 제작자인 오픈AI는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 발전기와 축열배터리 역할을 하는 태양광모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엑소와트’에 투자했다. 오픈AI는 또 대형원자로의 사용후핵연료로 작동하며 개별 공장, 기업 캠퍼스는 물론 AI 서버팜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 마이크로 원자로를 연구하는 ‘오클로’를 위해 5억달러의 투자금을 모금할 계획이다.
전환기 틈새 노리는 천연가스업계
하지만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만으로 충분할지 의문이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당분간은 AI가 촉발한 전력수요의 상당부분을 화석연료인 천연가스가 담당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컨설팅회사 리스타드에너지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태양광과 풍력만으로는 날씨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전력부하를 감당하기엔 벅차다. 미국 금융기업 웰스파고에 따르면 원자력은 무탄소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긴 프로젝트 일정을 단축하려는 새로운 첨단기술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까지는 1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천연가스업계는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를 파고드는 잠재적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운영사인 ‘킨더 모간’의 회장인 리처드 킨더는 지난달 1분기 실적발표에서 “당분간 상당량의 신규원전 용량이 가동되지 않을 것이며, 멀리 떨어진 재생에너지를 전력망에 연결하기 위한 송전선 건설에도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는 천연가스가 앞으로 수년 동안 전력수요 급증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킨더 모간의 미국시장 점유율은 40%에 달한다.
골드만삭스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AI와 데이터센터에서 증가하는 전력수요의 60%를 천연가스가 공급하고 나머지 40%는 재생에너지가 공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미국에서 전력생산을 위해 소비되는 가스는 하루 350억입방피트, 전체 가스소비량은 하루 1000억입방피트다.
AI, 데이터센터 확대 등으로 인한 천연가스 수요 상승 예측범위는 다양하다. 골드만삭스는 2030년 천연가스 수요가 하루 33억입방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는 반면, 휴스턴에 본사를 둔 투자은행 ‘튜더 피커링 홀트 앤 코’는 기본 시나리오에서 27억입방피트, 수요가 높은 시나리오에서 85억입방피트 증가로 보고 있다.
웰스파고의 경우 2030년 가스수요가 현재보다 하루 100억입방피트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현재 1000입방피트당 2.28달러(10일 장중가격)인 천연가스 가격이 2030년 3.50달러로 50% 가까이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웰스파고 애널리스트 로저 리드는 “AI와 데이터센터 수요 덕분에 천연가스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는 원자재치고는 꽤 높은 성장률”이라고 말했다.
한편 딜로이트 글로벌AI연구소 비나 암마나스 소장은 지난달 말 세계경제포럼(WEF) 기고문에서 양자컴퓨팅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AI와 양자기술 간 시너지를 촉진해야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며 “계산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기존 컴퓨팅과 달리, 양자컴퓨팅은 계산능력과 에너지사용량 사이에 선형적인 관계를 보인다. 또 양자기술은 막대한 탄소배출 없이도 AI모델을 더욱 컴팩트하게 만들고 학습 효율성을 높이며 전반적인 기능을 개선하면서 AI를 혁신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