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해 건물과 도시를 바꾸는 현실적인 방법들
환경과 복지를 재생하는 도시 … 지역난방과 건축물 단열, 자전거와 보행환경 개선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은 양극단이다. 도시는 숲과 농지를 파괴하고 세워진다.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며 엄청난 소비가 일어나는 환경파괴의 중심이다. 그러나 적절히 설계되고 관리된다면 도시는 인류가 지구에 거주하면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도시는 인간문명이 퇴화하는 곳이 아니라 환경과 인간 복지를 재생하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 많은 도시들이 이런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① 지역냉난방
도시의 특징은 높은 밀도다. 도시의 높은 밀도는 효율적인 냉난방이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특히 한국처럼 도시 인구 대다수가 아파트나 빌라 등 집합주택에 거주하는 경우 지역냉난방의 효율은 한층 더 높아진다.
지역냉난방은 중앙에 있는 냉난방 시스템이 파이프 연결망을 통해 온수와 냉수를 여러 건물에 공급한다. 열병합발전소나 열펌프(히트펌프)가 난방과 온수용으로 쓸 뜨거운 물을 공급하고 터보냉각기가 냉방용 물을 공급한다. 이 냉온수 연결망은 식수용 수도관과는 분리된다.
냉방과 난방을 중앙집중화하면 개별 건물이나 가정에서 독립적으로 보일러와 냉방장치를 설치·운영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이 높아진다. 중앙집중식 터보냉각기의 효율은 개별 냉방기의 5배 이상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1970년대 오일쇼크 때 이 시스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역냉난방 시스템은 프랑스 파리에 있다. 이 시스템 덕분에 루브르박물관과 오르세미술관은 세계적인 걸작들을 잘 보존하고 관람객들은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지역냉난방 부문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다. 석탄발전소와 폐기물소각발전소에서 나오는 폐열을 공급해 난방수요의 98%를 충족한다. 앞으로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 바이오매스발전이 난방수 공급을 대체할 예정이다.
2010년부터 코펜하겐은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 외래순해협의 차가운 물을 냉방용으로 공급하고 있다. 지역냉난방이 기존의 개별 온수 및 냉방 시스템을 대체할 경우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9.4기가톤까지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② 건축물 단열
‘단열’의 영어단어 인슐레이션(insulation)은 ‘섬’을 뜻하는 라틴어 ‘insula’에서 왔다. 열흐름의 관점에서 ‘건물을 섬처럼 만드는 것’이 단열의 목적이다. 단열재는 건물 안팎으로 원치 않는 공기의 흐름을 차단한다.
건물 실내온도를 19.5℃(겨울)~25.5℃(여름)의 바람직한 범위로 유지하려면 열흐름을 잘 단속해야 한다. 여름철에 뜨겁고 습한 공기가 집안으로 들어오면 밤새 에어컨을 돌려야 한다. 반대로 겨울에는 따뜻한 공기가 창문과 문틈, 벽과 지붕, 다락방과 지하실로 다 빠져나가기 때문에 보일러를 더 자주 돌려야 한다.
미국 그린빌딩위원회에 따르면 유입 공기는 가정용 냉난방 에너지의 25~60%를 먹어치우는데 이는 단순히 그냥 낭비되는 에너지다. 단열 시공은 새로운 건축물은 물론 오래된 건물의 개보수를 통해 에너지 사용을 효율적으로 만드는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다.
단열재의 종류는 다양하다. 유리섬유, 플라스틱 섬유, 미네랄 울(현무암이나 고로 슬래그로 만든 섬유), 재활용 신문지, 천연섬유(대마 양털 볏집 등), 복사열을 차단하는 반사형 단열재, 가금류의 깃털까지.
최근 개발된 진공단열재는 기밀성이 있는 외피(봉지)에 심재를 넣고 내부를 1m bar(기압단위) 이하 진공상태로 처리해 밀봉한다. 유리섬유를 심재로 채운 진공단열패널의 단열성능은 유리섬유의 16배, 폴리우레탄폼이나 스티로폼의 10배 이상이다.
1990년대 독일에서 제안된 패시브하우스 주택의 단열은 치밀하기로 유명하다. 건물 전체 외벽에 밀폐 단열을 하는 방식으로 기존 건축물 대비 90%까지 에너지를 절약한다. 일부 패시브하우스 주택은 매우 효율적이어서 헤어드라이기 정도의 열로 난방이 가능하다.
2050년까지 주거 및 상업용 건물의 54%에 효율적인 단열재를 설치하면 3조7000억달러의 비용으로 8.3기가톤의 이산화탄소를 저감할 수 있다. 단열재 수명은 대부분 100년 이상이므로 생애주기 냉난방 비용 절감액은 4조2000억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③ ‘걷기 좋은 도시’ 만들기
인간은 걸어다니는 동물이다. 인류 대부분의 역사에서 걷기는 가장 중요한 이동수단이었다. 모든 마을과 도시는 걸어서 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유럽의 옛 마을들은 1마일 간격으로 있었다. 1마일은 1000걸음이 기준이다. 약 1.6㎞로 사람이 걷다가 한숨 돌리고 쉴 수 있는 거리다. 우리나라 옛 거리 단위 ‘리(약 400m)’로는 4리 정도 된다.
20세기 이후 자동차가 대량생산되면서 대부분의 도시가 걷기에 불편해졌다. 기후위기 시대에 보행자 중심의 도시 환경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걸어다니면 자동차 운행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0’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어번랜드연구소(UCL)에 따르면 걷기에 적합한 콤팩트 개발을 하면 도시 사람들은 20~40% 더 적게 운전을 한다. 콤팩트 개발은 △주택부지를 적절한 밀도로 개발 △일터와 근접 거주가 가능하게 배치 △도시에 공원 등 열린공간 확보 △대중교통과 보행교통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도시계획가 제프 스팩은 ‘보행편의성’을 강조한다. 그가 강조하는 4가지 보행편의성은 걷기가 유용하고, 안전하다고 느끼고, 편안해야 하며, 아름답고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집 카페 공원 상점 사무실은 도보로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좁은 밀도로 뒤섞여 있다. 보행로는 폭이 넓고 자동차로 인한 교통체증에서 독립된다.
산책로는 밤에 불이 잘 켜져 있고 가로수가 무성하게 그늘을 드리운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통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이런 도시를 만드는 데는 자동차 중심 인프라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어간다. 보행가능한 도시는 주민과 기업, 관광객을 끌어들인다. 보행편의성이 개선될수록 지역 상인들은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걸을수록 교통체증은 완화되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든다.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교통사고가 줄어드는 것은 덤이다. 2050년에는 도시인들이 세계 인구의 2/3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 만들어지는 도시 환경의 6가지 차원(6D : 수요 밀도 설계 목적지 거리 다양성)은 모두 보행편의성의 핵심이다. 2050년까지 차량이동의 5%가 보행으로 대체된다면 2.9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④ 자전거 인프라
자전거는 적당한 표면에서 같은 양의 노력으로 걷기의 4~5배 속도로 달릴 수 있다. 자전거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자가동력 교통수단 가운데 가장 효율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덴마크 코펜하겐 시민의 30%는 약 30㎞의 자전거도로를 이용해 직장과 학교, 시장을 다닌다. 덴마크에는 코펜하겐과 교외를 연결하는 3개의 자전거고속도로 이외에도 23개의 자전거고속도로가 있다. 덴마크 내 이동량의 18%가 자전거로 이루어진다.
인근 네덜란드는 이 비율이 27%에 이른다. 네덜란드가 원래 이런 나라는 아니었다. 1967년 네덜란드의 한 당국자는 “자전거 타기는 자살행위”라고 선언했다. 2차대전 이후 네덜란드도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었고 교통사고가 크게 늘었다. 어린이 사망률까지 늘어나면서 전환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10년 만에 큰 변화가 생겼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위트레흐트는 자전거 메카 도시가 됐다. 암스테르담에는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4배 더 많다.
자전거 타기가 쉽고 빨라지려면 ‘그린 웨이브’와 같은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 코펜하겐의 그린웨이브는 주요 도로의 신호등을 자전거 운전자의 속도에 맞춘다. 자전거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현재 코펜하겐은 ‘반응형 신호등 시스템’에 투자하고 있다. 목표는 ‘자전거 이동시간 10% 단축’이다. 동시에 버스의 경우 5~20% 시간단축이 목표다.
2050년까지 전세계 도시의 자전거 점유율이 현재의 5.5%에서 7.5%로 증가하면 2.3기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피할 수 있다. 이를 통해 30년 동안 4000억달러를 절감하고 자전거 전생애 주기에 걸쳐 2조1000억달러를 아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