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 사라지는 동식물들
북극곰 벵갈호랑이 자이언트판다 바다거북 산호초 … 화석연료 사용, 숲 벌채가 원인
북극곰은 주로 얼음판 위에서 사냥한다. 북극해의 해빙 위에서 눈처럼 하얀 털로 위장해 잠복해있다가 얼음판에 있는 숨구멍으로 숨을 쉬러 나온 물범이나 물개 같은 해양 포유류를 사냥한다.
해양 포유류들은 몸도 유선형이고 앞발과 뒷발, 꼬리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발달해 물고기를 잡을 정도로 빠르다. 북극곰도 헤엄을 잘 치지만 물속에서 이들 해양 포유류를 잡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물범이나 물개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얼음 위에서 사냥한다. 얼음판 위에서 잘 드러나지 않도록 털도 흰색으로 진화했다.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해빙이 녹으면 물범이나 물개가 얼음판 위로 숨을 쉬기 위해 나올 일이 없어진다. 해양 포유류도 계속 물속에만 있지 않고 바닷가로 나오지만 땅에서는 북극곰의 위장술이 통하지 않는다. 하얀 털이 너무 눈에 띄어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뚝 떨어진다.
“북극곰 80년 이내에 멸종”
먹이가 부족해진 북극곰들은 점점 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온다. 알래스카에서는 북극곰이 마을의 개를 공격하기도 하고 사람들에게도 덤벼들어 늘 총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최근에는 북극에 사는 북극곰과 북미와 유럽, 북아시아 고위도 지역에 서식하는 회색곰(그리즐리곰. ‘공포의 곰’이라는 뜻)과 북극곰의 잡종인 ‘피즐리곰’이 다수 보고된다.
그롤라(grolar bear) 혹은 피즐리(pizzly bear)라고 불리는 이 곰은 북극곰과 회색곰의 잡종으로 2006년 캐나다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 피즐리곰은 몸집도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간다. 일어서면 키가 2.2~3m 에 이른다. 번식 능력과 적응력이 뛰어나며 북극곰과 회색곰의 강점과 장점을 모두 합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원래 북극곰과 회색곰은 서식지가 달라서 2010년 이전에는 희귀한 혼혈종이었지만 2020년대 이후 점점 늘고 있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북극의 서식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자 북극곰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반대로 추운 날씨를 좋아하는 회색곰들이 북상하면서 이 두 종의 서식지가 부분적으로 겹치게 된 탓이다.
북극곰이라는 종이 정착된 것은 약 15만년 전이다. 유라시아불곰의 일부 무리가 북극에 정착해 환경에 적응하면서 하얀 털색을 지닌 북극곰이라는 종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 시점은 현생인류가 탄생한 시점보다 한참 나중이다. 북극곰과 회색곰은 사람으로 따지면 피부색만 다른 인종 수준의 유전적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일부 생태학자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북극곰이 회색곰에 다시 흡수 통합되어 소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피즐리곰은 대부분 회색곰 수컷과 북극곰 암컷에게서 태어난 개체들이다. 수컷 사이의 번식 경쟁에서 북극곰은 회색곰에 밀린다. 수영 능력을 제외하면 덩치나 힘을 비롯한 신체 능력이 회색곰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북극곰 보호단체 ‘북극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이 추세로 가면 북극곰은 80년 이내에 멸종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막화로 몽골 식물 3/4 멸종
북극곰과 반대로 더운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동물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한 ‘사막화’로 고통받는다. 사막화는 건조와 가뭄, 지표면 수분 증발, 지하수위 하강 등으로 인해 땅이 식물이 자라기 힘든 건조한 지역으로 변하는 과정이다.
이렇게 되면 동물들은 풀 등 먹이를 찾기 어려워지고 멸종위기에 내몰린다. 건조해지면 산불이나 들불도 자주 발생해 서식지 파괴가 심각하게 진행된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과 스페인까지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해마다 약 600만㏊에 이르는 땅이 사막으로 변한다. 1996년 이후 UN 주도로 사막화방지협약을 하고 사막화가 심각한 나라들을 지원하지만 사막화 지역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유럽위원회 공동연구센터가 발표한 ‘세계 사막화 지도(World Atlas of Desertification)’에 따르면 지구 육지 면적의 75%에서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고 2050년에는 90% 이상이 황폐해질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국토 27.3%가 사막화됐고 사막화 면적이 매년 30만㏊씩 늘어나고 있다.
몽골의 사막화도 심각한 수준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22년에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몽골의 연평균기온은 지난 80년 동안 2.25℃ 상승했다. 세계 평균 0.7℃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면서 산악지대의 얼음이 일찍 녹아내리고 호수와 강은 말라붙었다. 초지가 30% 이상 줄어들면서 몽골 식물의 3/4이 멸종했다는 보고까지 나온다.
1990년대까지 몽골 국토 면적의 40%를 차지하던 사막은 최근 78%까지 늘어났다. 몽골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몽골에서 1166개의 호수와 887개의 강, 2096개의 샘이 사라졌다. 초지가 황폐해지면서 유목민도 크게 줄었다. 몽골 인구의 20%가 사막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지난주 제주올레의 사회적기업 ‘제주올레트립’이 진행한 몽골 올레길 도보여행과 고비사막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2007년에 ‘황사 발원지 고비사막을 가다’라는 주제로 고비사막을 횡단하는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 고비사막 지역의 가축들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느낌을 받았다. 특히 식물의 뿌리까지 캐 먹는 염소 개체수가 많이 줄어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막화가 더 진행되면 쌍봉낙타처럼 고비의 가혹한 환경에 적응한 동물만 살아남을 것이다. 낙타는 최악의 경우 물 없이 사막의 가시덤불만 먹고 살 수 있다. 더울 때는 체온이 42℃로 올라가도 견디고 추울 때는 신진대사를 줄여 체온을 34℃까지 내린다. 다른 더운피동물들은 체온이 이렇게 변하면 움직일 수도 없지만 낙타는 정상적으로 활동한다.
파충류 수컷이 태어날 수 없는 온도
알이 부화하는 온도에 따라 암수 성별이 달라지는 파충류들도 지구 온난화로 인해 멸종위기 직격탄을 맞고 있다. 유전자형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는 파충류도 일부 있지만 악어나 거북, 뱀 등 많은 파충류는 알이 부화할 때 온도가 암수를 결정한다.
악어 일부 종은 부화온도가 31℃ 이상이면 암컷으로 태어나고 30℃ 이하면 수컷이 된다. 거북 일부 종은 부화온도 28℃ 이하면 수컷, 31℃ 이상이면 암컷으로 태어난다. 노랑뱀은 부화온도가 26℃ 이하면 수컷, 28℃ 이상이면 암컷이 된다. 파충류 대부분이 부화온도가 낮으면 수컷, 높으면 암컷으로 태어난다.
지구온난화로 온도가 올라가면 암컷으로 태어날 확률이 점점 늘어나고 결국 극심한 성비 불균형이 나타난다. 바다거북의 경우 사람들이 알을 수거해 시원한 곳에 묻어주는 프로젝트를 시행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보고되었다.
2019년 미국 애틀랜틱대학 연구진이 플로리다 해변에서 태어난 바다거북 새끼들의 성비를 조사한 결과 최소 90% 이상이 암컷으로 나타났다. 결국 사람들이 해변에서 알을 파내 시원한 곳으로 옮겨 묻어주고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프리카 치타 남성호르몬 급감
그린피스는 기후변화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100만여 생물종 가운데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동물 5종을 꼽는다. 벵갈호랑이(Bengal Tiger), 아프리카 치타(African Cheetah), 자이언트판다(Giant Panda), 바다거북(Sea Turtle), 산호초(Coral Reefs) 등이다.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습지에는 약 5000마리의 벵갈호랑이가 산다. 유엔은 2070년이 되면 벵갈호랑이가 서식하는 습지가 해수면 상승으로 모두 물에 잠긴다고 경고한다. 아프리카 치타의 경우 극심한 폭염으로 수컷의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져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다. 치타는 지구상 7100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다.
자이언트판다도 기후변화의 위협에 놓였다. 먹이와 서식처를 제공하는 대나무 숲이 기후변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없어지고 있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산호초 지대도 화려한 색을 잃고 하얗게 죽어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닷물 온도가 자꾸 높아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