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환경장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
작은 정부와 큰 정부. 보수와 진보를 거론할 때마다 함께 등장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과연 합리적일까?
거창하게 각종 이론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평범한 시민이 정부에게 기대하는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아주 평범한 이야기다.
꽤 오래전 일이다. 성착취 피해아동 보호를 위해 법과 제도 개선 필요성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만난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법체계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강한 반대에 부딪힐 때였다.
“책상에서 공부한 법에서의 현실과 실제 현실은 굉장히 달랐다. 법이나 제도가 빠른 속도로 달라지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설사 법으로 되어 있다고 해도 현장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는 냉정한 머리는 물론 ‘따뜻한 시선’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이들의 눈물이 보였고, 법을 누구보다 존중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22일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김완섭 신임 환경부 장관은 “저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것(가습기살균제)을 많이 사용했다”며 “피해자, 특히 사망하신 분들이 1000명을 넘어 굉장히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안타깝게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정부로부터 아주 최소한의 보호를 받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 장관은 청문회 내내 경제통으로 환경가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지 많은 우려와 질타를 받았다. 아마 이러한 상황은 임기 중에도 계속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전문가라는 호칭이 없어서가 아니다. 환경은 미래가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은 늘 외롭다.
누구나 잘 먹고 잘 살고 싶다. 이 욕망을 실현할 때 환경은 걸림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본능이 지속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근간은 환경가치 실현에 있기 때문이다.
환경 기업들이 열심히 뛰고 해외에서 더 큰 경제적 입지를 이루도록 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에만 머문다면 굳이 국민 세금을 들여 하나의 큰 부처를 유지할 필요도 없는 게 사실이다. 차라리 그 돈을 기업들에 투자해 그들이 자율적으로 해외시장에서 뛰놀도록 하는 게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기술혁신이나 기업들의 성공은 과거처럼 정부 주도로 일궈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사회적 약자가 최소한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국가. 그리고 보다 나은 미래가치를 만들기 위해 힘들어도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환경장관의 존재이유다.
김아영 정책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