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정부초기대응 3대 부실│② 골든 타임에 선체진입 안해
허둥댄 해경, 선체진입 안하고 변명만
승객 퇴선 방송도 형식적 … 인력도 장비도 없이 현장에 투입
'세월호 참사'는 정부의 초기대응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한 '사고'에 그칠 수 있었다. 무책임한 선사와 선장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히지만 이를 신속히 수습하는 것은 정부 몫이었다.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정부의 재난 조기대응 실패를 되짚어본다. 편집자 주
침몰전 세월호에 진입했다면 상당수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면서도 선내에 진입하지 않고 주변만 맴돌았던 이들의 모습에서 국민들은 의문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지난 18일 김춘진(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세월호 침몰현장에 도착한 경비함과 해경상황실 간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녹취파일은 무능한 해경의 초기대응이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뱃머리만 남긴 여객선 지난달 1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에서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가던 6825t급 청해진 소속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해 뱃머리만 남긴채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퇴선명령 내릴 기회 있었다 = 녹취록에 따르면 해경이 사고발생을 처음 접한 것은 오전 8시 58분. 이로부터 함정과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30여분의 시간이 있었지만 지휘부는 선내 침투와 관련해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인근의 함정과 선박들을 세월호 침몰현장으로 보내는 데만 급급했다. 당시 45~50도 정도 기울어진 세월호 선내에 해경이 진입해 퇴선명령을 내렸다면 결론이 크게 달라질 수 있었다.
해경 지휘부는 오전 9시 48분이 되어서야 "123정 승무원들이 안전장구를 갖추고 올라가 승객들을 안정시킬 것"이라고 처음으로 선내진입을 지시했다. 선체가 62도 정도 기울었지만 선실이 있는 좌현 3층 이상 갑판이 침수되지 않아 이때까지 만이라도 해경이 선내 진입을 시도했다면 승객들을 충분히 퇴선 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123정은 "경사가 심해 못 들어가고 있다"며 사실상 지시를 거부했는데도 지휘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오전 9시57분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은 승객들을 바다로 뛰어들도록 할 수 있는지 묻지만 123정은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이미 배가 70도 이상 기운 10시 4분 서해지방청장은 "제일 먼저 한 사람만 밖으로 빠져나오면 다 줄줄이 밖으로 따라 나온다"면서도 결국 방송 이외의 다른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123정은 세월호 바깥에서 방송을 통해 위험을 알렸으나 이 소리는 배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혀 전달되지 못했다.
◆이동 수단 없어 늦은 특공대·122구조대 = 초기 선체 진입에 실패한 후 해경 지휘부는 즉시 잠수인력을 투입했어야 했다. 그러나 오전 9시 30분,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선박인 123정에는 잠수구조 능력을 보유한 해경특공대가 단 한명도 없었다. 해경은 현재 잠수 가능한 구조 전담인력을 232명 보유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해경특공대로 서·남·동해 지방청에 각각 40여명, 인천해경에 60여명이 배치돼 있으나 근해와 내해를 지키는 1000톤급 미만의 함정에는 배치되지 않는다. 목포해양경찰서의 경우, 특공대 45명 중 35명이 해상 임무를 수행하지만 모두 먼 바다인 배타적 경제수역(EEZ)만 담당한다. 중국어선 나포가 주된 역할로 정작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용하는 연근해 재난상황에 대비한 인력은 단 한명도 없는 것이다.
특히 특공대와 122구조대는 마땅한 이동수단을 찾지 못해 침몰 이후인 11시 20분에야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11시52분 세월호 선수에 부표만 매달고 철수했다. 이날 특공대와 122구조대는 이후 단 1명의 승객도 구조하지 못했다. 헬기를 타고 초기에 투입된 항공구조사도 잠수구조 능력이 있지만 유명무실하긴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침몰 초기 현장에는 헬기 3대가 출동해 구조 활동에 나섰다. 목포해경 소속 2대와 제주해경 소속 1대로 모두 3명의 항공구조사가 타고 있었다. 이들은 잠수복까지 입고도 배 바깥에서 승객들을 헬기로 인도만 했을 뿐 선내 구조작업은 하지 않았다.
◆구조보다 구조인원 숫자보고 급급 = 해경 지휘부는 이날 하루 종일 실종자 수색과 사고 수사의 기본조차 챙기지 못하고 허둥댔다. 오전 10시 14분 선체에서 해경 대원들이 철수한 이후 세월호 내에 남아있는 인원에 대한 지휘부의 구조명령은 사실상 없었다. 대신 해경 상황실은 현장에 끊임없이 구조인원 숫자를 확인하면서 보고할 숫자를 맞추는 데만 급급했다. 오후 12시 3분에는 잠수가 가능한 특공대 인원을 싣고 있는 헬기를 해양수산부장관을 태우러 현장을 떠나게 하기까지 했다. 인명을 구조해야 할 이 헬기는 오후 1시 25분에야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다.
지휘부는 세월호 안에 타고 있는 승객현황 및 내부 선체구조를 잘 아는 선장과 승무원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하는 데도 실패했다. 오후 1시 31분에야 생존자 가운데 선박의 구조를 잘 아는 선장과 조타수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뒤늦게 지시했다. 이씨의 신병을 확보한 오후 5시 40분 지휘함인 3009함에 데려와 선내 구조를 들었으나 세월호는 이미 침몰한 뒤였다. 이후에도 해경 지휘부는 예인선, 크레인, 청해진 함정 도착 여부 등에 대한 관심만 있었을 뿐 자체적으로 인명구조를 하기위한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해경 지도부가 실종자 수색의 기본조차 챙기지 못하고 허둥대는 사이 배 안에서 구출된 생존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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