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북면 김상춘 도예가

2014-06-16 09:09:37 게재

“다할 때까지 도자기 굽다 가면 되지”

바람 좋고 물 맑은 북면에는 주민들이 만들어낸 문화공간 ‘바로내작은도서관’이 있다. 이곳에서 동네사람들과 어울려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며 기꺼이 봉사활동을 하는 마을주민을 만날 수 있다. ‘시인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 ‘책 읽어주는 시인할머니’ 이명옥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북면의 매력에 빠져 마을 한가운데 집을 짓고 살러 온 이명옥씨는 한참 동네자랑을 하다가 80대 현역 도예가를 소개했다. 10년째 북면 사담리에서 유약을 바르지 않고 장작가마에서 도자기를 굽는 우향 김상춘 도예가가 그 주인공이다.


열정의 우향 김상춘 도예가

흙과 불, 사람의 협업 … 무유 장작가마 소성 도자기 =

예쁘게 돌담이 쌓인 마당에는 달맞이꽃이며 채송화가 흐드러지게 펴 있다. 꽃들 사이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항아리들, 아담하지만 황토를 발라 마무리한 집이 한 눈에 들어온다. 눈길 닿는 곳마다 종알종알 이야깃거리가 넘쳐날 것 같은 집이다.
도예가가 기거하는 집 뒤쪽에는 장작가마가 있다. 이전 사람은 담배 말리는 곳으로 썼다는 곳에 직접 가마를 짓고 도자기를 굽는다.
김상춘 선생의 도자기는 독특하다. 유약을 바르지 않고 65~70시간 장작을 땐 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는 나무재와 불이 만들어낸 묘한 색감을 나타낸다. 투박하고 고풍스럽다. 그래서 친근하고 깊이 있는, 은은한 멋과 맛이 있다. 단 한 가지도 같은 색감이나 무늬를 찾아볼 수 없다. 하나하나의 작품이 모두 고유하고 독특해 한참을 들여다봐도 신기하다.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빚고 다듬고 매만지는 작업은 석 달씩 걸리기도 한다. 작품이 어느 정도 모이면 가마에 불을 때는데, 65~70시간을 한 시간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온도를 맞추고 불을 관리한다. 언뜻 들어도 대단한 정성과 고집, 끈기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도예가는 “가마에 불을 때면서 ‘다시는 이 짓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지만 다음에 또 도자기를 굽고 있다”며 “이 일은 여자가 출산의 고통을 잊고 또 출산을 하는 것 같은 일”이라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천안의 도자기 굽는 할마이’ 김상춘 도예가는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작품세계로 정평을 얻고 있다.


김상춘 도예가는 마음에 맞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다관을 만든다

63세 입문, 만학의 도예가 =

반평생을 기술직 교육자로 일했던 김상춘 선생은 63세에 큰 딸의 권유로 도자기를 배우게 되었다. 단국대 사회교육원에서 도자기를 배운 김 선생은 4년간 휴일도 없이 도자기 실기에만 매달렸다. 졸업할 때가 되자 학교에서 개인전을 권유했다. “사회교육원 나와서 개인전 한 건 나 밖에 없을 걸? 대학에서 전공하고 대학원까지 마쳐도 개인전 할 만큼 작품을 갖추기는 어려우니까.”
이후 선생은 수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했고, 2003 사발 공모전 입상, 2007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점> 작가 선정,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공모전 입선 등의 수상경력도 있다. 단국대학교 도예학과 박종훈 교수는 “얼마나 많이 만들면 기교가 없는 듯 기교가 나타날 수 있을까? 작가 김상춘은 손맛이 매운 분”이라며 2008년 전시회를 격려한 적이 있다.
선생은 주로 다관을 만든다. “다관이 저렇게 많은 건,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만들어서 그런 거야.” 집 안 한 켠에 진열돼 있는 다관의 개수가 제법 된다. 제각기 다른 빛깔 형태를 뽐내고 있다.
80세의 나이가 무색하다. 힘 있는 목소리며 잰 몸놀림 초롱한 눈빛에 달변인 말솜씨까지 어디에서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다. 또한 그의 열정은 마주 앉은 사람을 압도한다. 배우고 싶은 열정이다. 선생은 “다할 때까지 도자기 굽다가 가면 되지 정신만 놓지 않으면 좋겠어” 라고 말했다.
얼마 전까지 6~7명 주부들이 도자기를 배우러 다녔다. 3개월 정도 배우면 사발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정기적이지 않지만 적정수의 인원이 모이면 도자기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선생은 지난 2년간 집을 손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예쁜 돌담도 직접 냇가에서 돌을 주워와 쌓았다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선생은 집을 수리하고 보니 민박하기 좋겠다 싶어 ‘돌담민박’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슬렁슬렁 마당을 걷다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인에게 청해 도자기 구경이라도 하고 운 좋게 차라도 한잔 얻어 마실 수 있는 민박집. 게다가 밤에 쏟아지는 별구경은 덤이겠다.

우향도예, 돌담민박 : 천안시 북면 사담리 247번지

 

남궁윤선 리포터 ako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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