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비합리성의 심리학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다

2014-09-26 11:45:26 게재
교양인 / 스튜어트 서덜랜드 지음 / 이세진 옮김 / 2만원

당신은 지금 영화관에서 최신 개봉작을 보고 있다.

그런데 너무 재미없다. 당신은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인가, 끝까지 영화를 볼 것인가.

연극을 보러 극장에 갔다. 입구에서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입장권은 나오질 않는다.

당신은 다시 표를 사서 연극을 볼 것인가, 아니면 그냥 돌아서서 집으로 향할 텐가.

영화 보기를 중도에 포기하고 일어선다면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이다. 하지만 대다수는 재미없는 영화라도 자막이 오를 때까지 자리를 지킨다.

사람에게는 어떤 일을 하느라 돈, 시간, 노력을 일단 지불하면 그 일을 계속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은 돈대로 쓰고도 시간마저 잃어버리는 이중 손실을 감수한다. 그들은 '헛돈을 써서는 안 된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보고 싶은 연극의 입장권을 잃어버렸다면 새로 표를 구입해 극장에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엉뚱한 계산을 한다.

관람료는 2만원. 입장권을 잃어버렸으니 표를 다시 산다면 비용은 두 배로 늘어 4만원이 된다. 그 연극을 4만원이나 주고 볼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 발길을 돌린다.

그들은 틀렸다. 입장권을 사는 데 든 2만원은 이미 날아갔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 상태와는 무관하다. 연극 관람은 여전히 2만원짜리이므로 처음 연극을 보기로 결정했을 때와 달라진 게 없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쓸모없는 계획을 포기하지 못하는 태도를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error)'라 한다. 이런 심리는 영화·연극 관람 말고도 주식 투자, 전쟁에서의 전략 등 광범위한 영역에서 작용한다.

"노벨상, 주지도 받지도 말라"

작고한 영국의 실험심리학자인 스튜어트 서덜랜드의 저서 '비합리성의 심리학'은 1992년 출간된 이후 폭넓은 지지를 받은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그 원작이 지난해 개정판으로 나오면서 국내에서도 새롭게 개정판을 내놓았다. 새 책에는 지난 20여년 뇌과학과 행동경제학 등 관련 분야에서 더욱 깊이 파헤친 '비합리성'의 비밀과 그에 따른 새로운 사례들이 추가됐다.

서덜랜드는 책을 쓴 목적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그 이유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내재한 결함은 아주 많고" "편견은 놀라울 만큼 보편적이면서도 대단히 파괴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 그럼 이제 그가 보여주는 '비합리성의 세계'로 나아가자. 먼저 '알려진 바와는 달리 쓸모없는 일'들이다.

헌혈하는 사람들에게 사례금을 주면 헌혈 횟수가 늘어날까.

그렇지 않았다. 사례금 10달러를 받은 사람보다 받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헌혈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림을 잘 그렸다고 상장을 받은 집단보다 받지 않은 집단이 그림을 더 흥미롭게, 많이 그렸다.

아이건 어른이건, 물질적인 보상을 주면 즐겁고 유쾌한 일이나 가치 있다고 여기던 일을 도리어 평가절하한다.

따라서 서덜랜드는 모든 상이 백해무익하다고 단언한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자기 과신에 빠지거나 적합하지 않은 분야로 선회했다고 지적한다.

"상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강조한 그는 "어쩌다 노벨상을 받게 되거든 수상을 거절하라"고 권유한다.

면접이 불필요한 이유는

신입사원·신입생 뽑기에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면접 역시 선발 방식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면접관들은 지원자에게서 능력에 상관없는 특징-예컨대 외모-에 호감을 가지면 별다른 근거 없이 일(또는 공부) 또한 잘할 거라고 판단한다. '후광 효과(halo effect)'이다.

'대비효과(contrast effect)'도 작용한다.

유난히 인상이 좋거나 똑똑한 지원자에 뒤이어 등장하면 점수가 깎이게 마련이고, 거꾸로 시원찮은 지원자의 다음 순서라면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 쉽다.

"면접관은 지원자의 인상을 첫 1분 정도에 결정하고 나머지 시간은 이를 확인하는 데 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므로 모든 지원자들에게 미리 정한 주제와 질문을 던지는 '구조화된 면접'이라면 차라리 서면으로 답변하도록 하는 게 낫다. 지원자를 직접 만나서 생길 편견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어떤 성격의 위원회든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 △투자분석가의 수익이 시황에 못 미치는 까닭 △친선은커녕 적대감만 부추기는 친선경기의 실상 등 우리의 상식을 깨부수는 다양한 주장이 심리학 실험 결과를 토대로 전개된다.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아라

이제 인간이-나 자신을 포함하여-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살아가는가를 알게 됐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리성을 찾을 수 있을까.

서덜랜드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을 인용해 인간은 경솔한 신념의 동물이며 반드시 뭔가를 믿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판단을 유예할 줄 모르는 것이 비합리성의 가장 두드러진 측면"이라고 보았다.

반면에 합리적 사고를 "개인이 지닌 지식 수준에서 정확할 확률이 가장 높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이루려면 마음을 열어 놓고 모든 증거를 살핀 다음에 결론을 내려야 하며, 도중에 뜻을 번복하는 일이 유약함 탓이 아니라 강인함의 표시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신의 신념에 반대되는 증거를 찾으라고 권하면서 증거를 찾아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면 판단을 유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도 스스로 합리적인 인간이 되기는 쉽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더라도 본인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만으로도 적잖은 수확일 터이다. 게다가 읽는 재미에 쏠쏠한 지식까지 제공한다면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용원 언론인·동국대 신방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