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경제 |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
협동경제를 꿈꾼 일탈의 사상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세계를 휩쓴 지 8년차가 됐는데도 전세계는 여전히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경제지표가 예전만 못해서가 아니다. 시장, 경제, 민주주의, 기술 등을 바라보는 시각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생겨나고 있는데 아직 뚜렷하게 정립된 뭔가가 없어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도움을 줄 만한 사상가가 칼 폴라니(1886-1964)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사회철학자이자 냉철한 사상가였던 그는 생전에 비주류에 머물렀지만 사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재조명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지적한 그의 이른 문제제기들은 노벨 경제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오늘날의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는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라고 말할 만큼 생생하다. 우리나라에도 아시아 최초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의 아시아 지부가 설립됐다.
폴라니는 '자기조정 시장'의 필연적 실패를 경고했다. 자기조정 시장이란 인간이 경제적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며 이들로 구성된 시장은 스스로 굴러간다는생각이다. 폴라니는 이런 생각이 '신화'에 불과하며 자기조정 시장의 파괴적 경향이 농후함을 짚었다. 실제로 자기조정 시장은 어마어마한 경제성장을 이끌며 사람들이 신화에 취하게 만들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취기에서 빠져나온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생산된 부가 점점 더 부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고, 실질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을 뿐 아니라, 빈곤선 아래로 추락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민낯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폴라니가 주장한 경제는 협동적 경제다. 노동, 소비, 생산이 모두 자신을 대변할 대표자를 통해 여러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경제를 말한다. 폴라니는 "자율적인 협동조합들이 서로 유기적 구조를 맺는 가운데 생산과 소비가 시장에 의해 조직될 것이며 유통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중간 거래, 투기, 그 밖의 모든 기생적 행태들이 배제될 것"이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