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죽지 않은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

2015-05-01 11:30:23 게재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만8000원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강의> 에서 '동양고전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탐색을 거쳐, 이제 그 두 가지 '사색'과 '강의'가 합쳐져서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나옵니다."

신영복 교수의 <담론> 출간기념 인터뷰에서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는 이렇게 평가했다.

신영복 교수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옥살이했다. 이 과정에서 바깥세상과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다. 80년대말 20대 초반이던 기자가 읽었던 선생의 책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20년 넘게 '닫힌 공간'에 머물면서 '열린 사고'를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제한된 인간관계 속에서 오히려 인간간계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에 놀랐다.

1988년 8월 15일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한 신 교수는 이듬해인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해 25년을 강단에 섰다. 지난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강단에 서지 않기에 그 미안함을 새로 나온 책 <담론> 으로 대신한다고 밝히고 있다. 감옥에서 나온 뒤 25년의 정수가 여기에 담긴 셈이다. 선생의 강의노트와 학생들 녹취록이 <담론> 의 근간이다. 이번 책에서 저자는 동양고전에 대한 독법을 주로 다룬다. 하지만 단지 '동양'과 '고전'에만 머물지 않는다. 동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고대와 현대를 아우른다. 이성영역인 문사철(文史哲)에만 빠지지 않고, 시서화악(詩書畵樂)이라는 감성영역을 함께 살펴 인식지평을 넓히고 있다. 첫 강의인 시경에서 인식틀을 바로세우고, 두 번째 주역에서 관계론을 설파하고 있다. 이렇게 책 1부에서 논어 맹자 한비자 노자 장자 묵자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피면서 세상을 보는 눈과 인식의 틀을 제시한다. 2부에서는 다시 인간에 착목한다. 스스로 '대학생활'이라고 명명한 감옥생활에서 배운 인간에 대한 이해와 자기성찰을 오롯이 담고 있다.

특히 선생은 마지막 강의에서 죽지 않은 이유와 살아가는 이유를 언급했다. 견디기 쉽지 않은 긴 옥살이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이다. 겨울철 독방에서 만나게 되는 햇볕은 길어야 두 시간이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다. 그러나 그 따스함은 자살유혹마저 이길 만큼 강렬했다고 한다. 살아가는 이유는 '깨달음'과 '공부'였다고 한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넓혀가는 공부와 깨달음에서 찾은 삶의 이유는 한 뼘 크기 햇볕만큼이나 선명해 보인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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