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한명관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
"멀티미디어시대, 디지털 자료 증거능력 인정해야"
한-불 법률포럼 결성 준비 … 형사소송법 국제화도 추진
하지만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은 문서 형태의 서류만 인정하고 있다. 1950년대 증거가 서류로 돼 있다는 전제에 따라 형사소송법이 만들어졌고, 아직도 그 조건은 유효하다.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이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계정과 이메일 첨부 문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출력한 문서는 '전문증거'(법정 증언이 아닌 간접 형태로 제출된 증거)에 해당해 피고인이 부인할 경우 증거능력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가 이같은 디지털 자료 증거능력 관련 형사소송법 개정에 의욕적으로 나섰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피의자신문조서의 영상녹화물이나 이메일 등 디지털 자료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데 초점을 맞췄다.
올해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을 맡은 한명관(56) 전 검사장은 "형사소송법은 증거가 서류로 돼 있다는 전제로 규정돼 있다"며 "구두주의에 입각한 공판중심주의를 충실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서보다 조사자 증언의 활성화, 디지털 증거의 사용 등 형사증거법 전반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올해 중점 목표를 디지털 증거능력을 위한 보완입법에 두고 법률개정안과 해외 사례 등을 연구해왔다.
한 회장은 "실체적 진실을 위한 증명력 확보는 보다 다양한 증거를 법정에 현출해 법관이 심증을 가지게 해야 한다"며 디지털 자료 등의 다양한 증거의 채택을 주장했다.
◆근대법 모태 나폴레옹법전 연구 = 한 회장은 프랑스법 전문가다. 1994년 검사 시절 프랑스국립사법관학교에서 연수했고, 2013년 검사장 퇴임 후에도 곧바로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 부패방지청에서 1년간 연구위원을 맡아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 귀국 후 법무법인 바른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한국형사소송법학회장을 맡고 있다. 형사소송법학회장으로서 그는 프랑스법 연구와 한국의 형사소송법 국제화를 업무 목표로 삼고 있다.
"근대 법의 모태가 되는 나폴레옹 법전이 프랑스 사회를 어떻게 바꿨고,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
나폴레옹 법전은 근대 법전의 기초로 세계 3대 법전(유스티니아누스법전·함무라비법전·나폴레옹법전) 중 하나다. 나폴레옹 법전에는 프랑스 혁명을 통해 법 앞에서 평등, 취업의 자유, 신앙의 자유, 사유재산의 존중,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책임주의, 소유권의 절대성 등 근대시민법의 기본 원리가 반영돼 있다.
한 회장은 프랑스 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한-불 법률포럼 창립을 추진중이다.
모든 분야가 국제화하는 지금, 한 회장은 형사소송법 역시 국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프랑스는 형사 피고인이 자신이 무죄를 입증하는 '자기 입증제'를 일부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검사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우리 제도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이런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 법제를 연구하는 모임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중 사법제도 연구 학술대회 = 동아시아 법률 비교 분석을 위해 중국과의 학술교류도 중요한 과제다.
한 회장은 형사소송법 국제화의 한 방안으로 중국과의 사법제도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는 7월 한국에서 열리는 한중형사소송법학회 학술대회에서는 형사소송법의 국제교류와 함께 사법공조 등 다양한 주제의 연구 토론이 이뤄질 예정이다. 한국과 중국의 형사소송법의 비교 연구하면서, 국제 사법공조 등에 대한 진단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이번 한중학술대회 의제는 '공판중심주의 소송이념 및 제도 설계'라는 대주제로 설정됐다. 한국 측 10명, 중국 측 10명의 학자와 실무자가 공판중심 소송이념 및 법정심문제도 설립, 수사권의 규제와 감독, 한중 형사사법 공조방안 등에 대해 발표한다.
"문명의 변화를 알아야 법 제도의 개선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 교류가 중요하다. 국제 교류를 위한 단체들이 많아져 서로 의견을 소통하면 세계가 공평타당한 법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고 한 회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