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창간 22주년 기획 | 제조업이 국가경쟁력이다(상)

제조업 기반없이는 창조경제도 없다

2015-10-19 10:36:50 게재

한국, 자원없는 좁은 땅에서 압축성장한 것은 제조업 토대

20세기말~21세기초 한국경제는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압축적인 고도성장을 해왔다.

1970년 255달러였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반세기만인 2014년 2만4565달러로 100배 가까이 성장했다. 60년대 우리보다 잘 살던 필리핀 인도네시아 터키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은 이제 한국을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1960~70년대 주력 수출품목이었던 가발을 생산하는 구로공단 공장 모습. 사진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60년대 극빈경제(국민 1인당 하루소득 1.25달러 이하)에서 2003년 이후 고소득경제(1만2196달러 이상)로 전환하며 세계 경제의 중심국가로 도약한 것이다.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 세계 5위 =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1위, 수출 7위, 외환보유고 세계 6위, 세계 9번째 무역 1조달러 달성(2011년)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위상이다. 과학기술혁신역량지수(COSTⅡ)는 OECD 국가 중 2009년 12위에서 2014년 7위로 향상됐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3년 우리나라가 세계 수출시장에서 1위인 품목은 65개에 이른다. 2011년 61개, 2012년 63개, 2013년 65개로 소폭 증가세다.

특히 6년간 세계 1등을 유지해온 품목은 메모리반도체 자동차부품 탱커 등 24개이며, 이중 탱커는 세계 수출시장의 54.5%를 점유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2~5위에 오른 품목도 493개로 나타났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제조업 수출은 중국 독일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5위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가전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위이며, 반도체 2위, 자동차 5위 등 주요 제조업의 경쟁력은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천연자원이 거의 없고, 좁은 국토를 가진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권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근간은 강한 제조업이었다"며 "21세기 글로벌 제조업 전쟁의 성패를 좌우할 향후 3년은 앞으로 30년의 성장을 판가름할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중국의 힘도 제조업에서 출발" =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제조업 기반이 없으면 창조적 축적의 기회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며 "중국이 세계의 파워하우스로 등장하게 된 배경도 강한 제조업 역량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독일 일본 등 산업선진국들이 최근 제조업을 살리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제조업 현장은 단기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전후방 파급효과를 가져오며, 장기적으로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 교수는 "생산활동은 개도국으로 아웃소싱하고,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지식노동을 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해야 한다"면서 "생산현장이 없으면 고부가가치 창출의 원천이 되는 고급의 경험지식을 축적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물론 성장전략의 한계, 취약한 기업성장 생태계, 제조업 고도화 지체, 주력산업에서 중국·일본과의 경쟁격화 등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제조업의 위기론이 제기된 주이유는 표준화된 기술영역에서 중국 등 개도국이 빠르게 추격해오는데다 새로 개척해야할 고부가가치 '개념설계' 영역에선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압축성장 이면에는 개념설계 역량을 확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선진기업들에 의존해 벤치마킹에 급급해온 탓이다.

'개념설계'는산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량을 말한다. 실행 역량이 필요한 단계보다 더 선행 단계에서 요구되는 창조적 역량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사진 삼성전자 제공


첨단기술로 글로벌 시장 선도 = 한국 제조업의 위기 극복 방법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방법이든 추격해오는 중국기업과 격차를 벌리면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첨단기술을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산업이 있다. 디스플레이산업이 대표적이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은 차세대 기술로 불리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을 양산함으로써 중국기업과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는 13년째 세계 1위다.

원천기술을 확보해 세계 시장 1위를 하고 있는 산업으로는 스판덱스를 꼽을 수 있다.

섬유의 반도체로 불리는 스판덱스에 도전한 한국기업은 후발 주자였지만 자체 기술 개발 성공과 생산네트워크를 바탕으로 2010년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쓰임새가 늘고 있는 고흡수성 수지(SAP)는 범용 수지 일색인 국내 석유화학산업에 새로운 바람으로 주목받고 있다. 범용 수지는 중국기업의 물량공세와 공급과잉으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세계시장에서 800만대 이상 판매하며 세계 5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으며 한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단기성장만 추구하는 건 이제 그만 = 기업의 시스템과 마케팅 혁신으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산업도 있다. 한국 기업이 세계 1위의 자동번역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기업은 성공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함으로써 성과를 냈다. 건설구조 소프트웨어 분야도 세계 1위에 올랐다. 구성원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회사 시스템을 혁신한 것이 원동력이었다는 평가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대기업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떨어지고 있고 중국 추격이 거세다"며 "위기에 빠진 제조업이 이를 벗어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첨단기술로 무장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호 한국공학한림원 회장은 "저성장 기조에서 벗어나 고용과 투자가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경제도약을 위해서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적 진화로 산업기반 고도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윤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잠재성장률의 제고가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기술혁신을 통한 생산성 제고로 요소투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단기성장 추구에 그치지 말고 장기적인 차원에서 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기술혁신이 필요하다"며 '기술융합을 위한 기술혁신의 전환'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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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 범현주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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