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문가 274명이 본 2016년 경제 ①
가계부채·한계기업·저출산 … 침몰하는 한국경제
이대로는 경제위기· 장기저성장 불가피 … 위험요인부터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 찾아야
2016년 새해를 맞아 내일신문이 경제전문가들을 상대로 실시한 경제전망 조사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한국경제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전문가들의 진단은 더 암울했다.
◆대외 충격은 '방아쇠', 근본원인은 악화된 가계건전성 = 경제전문가의 절반 이상은 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제위기설'에 공감하고 있었다.
'향후 1~2년 내에 우리나라에 경제위기가 발생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274명의 56.9%인 156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중 28명(10.2%)은 '매우 그렇다'고 답해 경제위기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2016년 또는 2017년에 우리경제에 큰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위기설은 2015년 초반부터 시장에 퍼졌고, 경제학자들 중에도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미국 금리인상이나 신흥국 금융불안 등 대외 돌발변수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면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가계와 한계기업들이 무너지고 자산가치가 폭락하면서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시나리오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경제가 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조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3분기말 현재 가계부채는 1166조원에 달한다. 3분기에만 34조5000억원이 늘었다. 추세대로라면 2015년말 12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9월말 현재 480조원 규모다. 최경환 부총리 취임 이후 부풀어 오른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 당장 문제가 되는 자금들이다.
기업부채도 만만치 않다. 올 3분기 민간기업의 핵심부채는 1318조8000억원이었다. 핵심부채란 기업 금융부채 중 채권, 대출금 및 정부융자를 합한 것을 말한다. 여기에 상거래신용 등 기타부채를 더하면 민간기업 총부채는 1998조4000억원으로 2000조원에 육박한다. IMF마저도 한국 가계와 기업 부채에 대해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고, 신흥국과 산유국 경제불안,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 위험요인이 증대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경제위기를 예상한 이유로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가계건전성 악화'(63명, 40.4%)를 가장 많이 꼽았다. 다음은 '회사채 등 금융시장 위축으로 인한 기업 부도 증가'(35명, 22.4%)였고 '미국 금리인상 등으로 인한 외국인 자금 유출', '신흥국 위기의 전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각각 27명(17.3%)과 24명(15.4%)이었다.
대외 충격이 경제위기의 '방아쇠'가 되겠지만 위기의 근본원인은 과도한 가계부채와 기업부실에 있다고 본 결과다.
◆소비여력 주는데 일시적 대책에 주력한 정부 = 일시적인 경제위기보다 장기저성장을 전망한 전문가들은 더 많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저성장에 빠져들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144명(52.6%)이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이미 장기저성장에 접어들었다는 응답자도 108명(39.4%)이나 됐다. 전문가 10명 중 9명 이상이 장기저성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장기저성장을 전망한 전문가들 중에는 '저출산 고령화' (78명, 31.0%)와 '소득정체·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인한 소비부진'(77명, 30.6%)을 원인으로 꼽은 이들이 많았다. 다음은 '신성장동력 부재'(53명, 21.0%), '제조업 경쟁력 약화'(37명, 14.7%) 등의 순이었다.
실제 저출산 고령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요인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당장 통계청 추계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04만명을 정점으로 2017년부터 줄어들게 된다.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경고음이 울린 지 오래됐고, 정부도 대책을 내놓았지만 추세는 변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지 못한 탓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대책의 핵심은 교육과 주거 문제를 해소하는 데 있다"며 "대통령이 약속한 누리과정 무상지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누가 마음 놓고 애를 낳으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 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역시 안정적인 고용, 일과 가족생활 양립, 주거문제 해소, 노후소득보장 등을 위한 대책으로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부진 역시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한은의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9월말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사상최고치인 143%로 추정됐다. 3월말과 비교하면 5.0%p나 상승했다. 소득보다 부채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 소비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처분소득에서 부채상환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1.4%였다. 100만원을 벌면 41만원은 빚은 갚거나 이자를 내는데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정부는 소득을 늘리거나 부채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 대신 코리아블랙프라이데이나 개별소비세 인하 등과 같이 일시적으로 소비를 진작시키는 정책에만 주력했다. 그 결과 소비지표는 반짝 좋아졌지만 신년초부터 '소비절벽'을 우려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성장동력은 창출하지 못하고 한국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 경쟁력은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기존 정책 대응으론 경제회복 어렵다 = 이번 설문조사 결과는 기존 방식으로는 한국경제가 갑작스런 경제위기도, 장기적인 저성장도 피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당장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로 '가계부채 해소와 기업구조조정'(84명, 30.7%), '신성장동력 창출'(55명, 20.1%)을 꼽았다.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4대 부문 개혁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54명(19.7%)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우선 위험요인부터 해소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데 주력해야한다는 주문이다.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지금까지 해왔던 정책대응으로는 침몰하는 한국경제를 다시 일으켜세우기 어렵다"며 "금융기관들이 손실을 입더라도 가계부채 부담을 덜어주고 한계기업을 빨리 정리하는 등 과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조사했나]
내일신문이 디오피니언에 의뢰한 '경제전문가에게 물어본 2016년 경제전망' 조사는 어느 해보다도 불확실한 해로 꼽히는 내년 경제를 내다보기 위해 기획됐다. 미 금리인상 본격화, 중국의 성장둔화, 신흥국의 금융불안 등의 거센 파도를 노련한 뱃사공처럼 넘겨야 하는 우리 경제를 전문가들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물었다.
조사 대상 전문가에는 민관을 두루 포함해 균형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학회 및 대학의 경제 관련 교수, 민간 경제연구소, 증권사 애널리스트 등 총 1996명에게 전화면접조사로 진행했고 이 중 274명의 전문가가 응답했다. 여기에는 대학교 경제 관련 교수 134명, 민간 경제연구소와 KDI 등의 연구원 122명, 증권사 애널리스트 12명 등이 포함됐다. 정치성향은 중도가 65.3%, 보수 16.8%, 진보 9.1%, 모름·무응답이 8.8%였다.
조사기간은 미국 금리인상 직후인 12월 21~22일 이틀 동안이다.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5.5%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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