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중년 남성 요리 모임 ‘분당 우허니’

파스타 만드는 꽃중년들의 맛있는 초대

2016-06-14 21:45:06 게재

‘우허니’는 전라도 방언으로 ‘다같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주에서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이 분당에서 터를 잡고 살면서 ‘분당 우허니’는 시작되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 치열하게 40~50대를 보내다 50대의 끝자락에서 친구들은 삶에 쉼표를 찍고 싶어졌고, 무언가 함께 하고 싶어졌다. 노래를 함께 불러보고, 춤도 함께 배웠다. 정말 쿵짝이 잘 맞았다. 그래서 이번엔 ‘파스타 만들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예순의 분당 아저씨들 파스타를 삶다
사실 중년의 남성들이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우기란 녹록치 않은 일이다. 매번 바쁜 시간을 쪼개 틈을 만들기도 그러거니와 더욱이 ‘요리’를 배운다는 건 아무리 요즘 매스컴에서 요리하는 남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해도 일반인들로서는 생경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친숙한 잔치국수나 칼국수가 아닌 저 멀리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국수, 파스타를 만든다.
분당 효자촌의 한 상가건물 2층에 위치한 ‘디벨라 파스타 만들기’라는 요리 강습장에서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퇴근 후 파스타를 만들고 본인들이 만든 파스타를 예쁘게 접시에 담아 와인을 곁들여 저녁모임을 갖는다.
모임의 대표 시채수(이매동·59)씨는 “우리는 전주 신흥고등학교 동기들로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40~50대를 살았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서 독립해 이제 슬슬 현역에서 은퇴할 때도 됐다. 이제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면서 “밥 먹고 술 마시는 뻔한 모임을 갖는 것보다 무언가 우리끼리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배워보자는 데에 의견이 모아져서 파스타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고 전했다.

 

가족들이 좋아하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마침 이날은 ‘고등어 올리브 오일 파스타’를 배우는 날이었다. 현영호 셰프의 지도 아래 멤버들은 푸실리와 스파게티 두 종류의 파스타 중 본인이 원하는 것을 선택해 일인용 팬에 파스타를 삶았다. 현 셰프가 미리 레몬 등에 재워 밑 손질한 고등어를 손으로 일일이 가시를 발라내는 중년 남성들의 진지한 모습이 낯설면서도 보고 있노라니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오늘은 좀 난이도가 있는 날”이라며 꼼꼼하게 고등어 가시를 발라내고 마늘을 저미던 송우엽(삼평동·59)씨는 “이번 고등어 파스타는 아무래도 가족들에게 못 해줄 것 같다”면서 “지난번에는 수제 피클 만드는 법을 배워서 집에 가서 가족들한테 해주었는데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면서 엄지를 들어 올렸다.
옆에서 재료들을 다 손질하고 난 도마와 칼을 깨끗이 설거지하던 시씨도 “나도 지난 5월 연휴에 미국에 날아가 공부하는 딸과 딸의 친구들을 모아 놓고 스파게티로 점수 좀 땄다”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소스도 통조림이 아니고 직접 토마토를 사서 만들었더니 딸내미 눈이 휘둥그레지더라”는 시씨의 말에 현 셰프는 “정말 제대로 잘 하셨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루룩 먹는 국수 VS 꼭꼭 씹는 파스타
야탑동에 사는 임재학(59)씨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는 실력파답게 이날 리포터를 위한 파스타까지 2인분의 파스타를 만들었다. 임씨는 “남자들은 나이가 들면 어느 정도 부인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평소에도 주방을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몇 가지 메뉴 정도는 만들어야 ‘물 먹은 낙엽’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 모두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몇 번 가족들한테 파스타를 만들어 줬는데 가족들이 정통 이탈리아식 파스타를 좀 생소해 했는데 이제는 이 맛을 알고 좋아한다”고 전했다.
임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 셰프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푹 끓인 국수를 후루룩 후루룩 먹는 것에 친숙한데 사실 이탈리아 파스타는 살짝 덜 익은 느낌으로 삶아야 파스타를 꼭꼭 씹어 먹으면서 본래의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너희는 나의 힘, 나는 너희의 힘
이윽고 고등어 올리브 오일 파스타가 완성되고 회원들은 모두 본인이 만든 파스타를 예쁘게 접시에 담았다. 사실 다들 사회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이들이지만, 파스타 접시 하나, 와인 잔 하나, 포크 하나로 서로의 어깨가 부딪힐 만큼 정겹게 둘러앉은 작은 테이블에서 소박한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보였고 인상적이었다. 오랜 친구들과 옛 이야기, 함께 했던 추억거리, 요즘 사는 이야기를 파스타 면과 함께 포크에 찍어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분당 우허니’ 멤버들과 불가피하게 저녁 식사를 한 번 더 한 리포터는 부른 배를 두드리며 취재를 마쳤다. 차에 올라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 제과점 창가로 조금 전 헤어진 반가운 이들이 보였다. 술집이 아니고 빵집이라니, 웃음이 픽 난다. 커다란 빵집 창가에 비친 친구들의 모습에서 오래 전 머리를 짧게 자른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사투리도 편하게 튀어 나오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두어 시간의 힘으로 그들은 지금 이 시간도 힘차게 살아갈 것이다.

문하영 리포터 asrai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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