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이 뭐길래 … 68년째 이어지는 시리아의 대리전
시리아 내전은 독재정권에 대응하는 반란인가. 아니면 실패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권력암투인가. 혹은 미국과 러시아 터키 이란이 영토와 이데올로기를 놓고 벌이는 대리전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혹 다른 내막이 있는가.
존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조카이자 환경운동가, 변호사, 작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62)에 따르면 시리아 내전은 지중해를 관통해 유럽으로 뻗어나가는 천연가스 송유관을 둘러싸고 68년째 이어지는 지루한 싸움이다. 시리아에게 큰 비극을 안겨준 주범은 바로 송유관 루트 한가운데 자리잡은 지정학적 중요성이다.
케네디 변호사는 올 2월 '에코와치'에 기고한 장문의 글 '시리아내전은 가스송유관 전쟁'에서 20세기 중반부터 시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을 차분히 훑어나간다.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후원한 쿠데타와 반대 쿠데타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은 1950년대부터 시리아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냉전의 절정기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임명한 덜레스 형제, 즉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과 앨런 덜레스 CIA 국장이 미국의 외교정책을 쥐락펴락하던 때였다.
현재 발호하는 '이슬람국가'(ISIS) 세력을 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은 미국의 시리아 개입에서부터 시작됐다. 폭력적인 이슬람 '지하디즘'(이슬람원리주의 무장투쟁)의 씨앗을 뿌린 건 미국이었다.
케네디 변호사는 "미국 국민과 정치인들이 이같은 과거를 알지 못하는 한, 시리아내전 개입은 점점 더 위기를 가중시킬 뿐"이라며 "테러세력들은 미국과 미국인의 무지를 두 손 들어 반기고 있다"고 말한다.
시리아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특히 현 갈등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슬람 수니파의 봉기를 야기해 결국 현재의 ISIS라는 괴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CIA는 냉전에 요긴하게 써먹을 요량으로 이슬람 지하디즘을 비밀리에 지원해왔다. 이는 결국 미국과 시리아의 관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요인이 된다.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덜레스 형제는 "중동을 냉전의 중립지대로 만들고 아랍지역은 아랍인들에게 맡겨두자"는 당시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대신 미국은 아랍 민족주의를 탄압하는 비밀스런 전쟁을 중동 곳곳에서 일으킨다. CIA 국장 앨런 덜레스는 아랍 민족주의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아랍의 민족자결주의가 미국의 막대한 이익이 걸린 석유채굴권을 위협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요르단 이라크 레바논 등의 전제군주들에 비밀스런 군사적 원조를 지속했다. 지하디스트 이데올로기를 가진 보수적 괴뢰정권을 세워 소련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방어막으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7년 9월 당시 CIA 기조실장 프랭크 위즈너와 존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을 백악관으로 불러 "중동에서의 활동을 '성스러운 전쟁'(holy war)으로 보일 수 있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한다.
CIA, 사업제안 거절하자 쿠데타 자행
1947년 9월 창설된 CIA는 1년여가 지난 1949년 시리아에 침투한다. 시리아 애국시민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세력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데 이어 프랑스 비쉬정부의 식민지배를 몰아냈다. 이후 미국식 민주주의모델을 따라 취약하지만 세속적인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1949년 3월 민주적으로 선출된 시리아 대통령 슈크리 알-쿠와이티는 미국이 제안한 프로젝트 승인을 머뭇거렸다. 사우디 유전에서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의 항구도시를 잇는 '트랜스 아라비안 파이프라인' 건설사업이었다. 전 뉴욕타임스 기자였던 팀 와이너는 CIA의 역사를 고찰한 책 '레거시 오브 애쉬즈'(Legacy of Ashes, 2008년 발간)에서 "CIA가 구데타를 기획해 고분고분하지 않았던 알-쿠와이티를 축출하고 사기범죄 전력의 말 잘 듣는 독재자 후스니 알-자임을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자임도 의회를 해산하고 미국이 원하는 송유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없었다. 알-자임을 반대하는 또 다른 쿠데타가 벌어져 고작 14주간의 짧은 임기를 마감했다.
앨런 덜레스가 이끄는 CIA는 미국의 공식 외교방침과 직접적으로 반하는 경우가 잦았다. 1941년 미국과 영국이 공동채택한 이상적인 외교이념인 '대서양헌장'(the Atlantic Charter)은 제대로 시행도 되지 않고 폐기됐다.
1957년 케네디 변호사의 조부인 조지프 케네디 전 주영대사는 중동에서 CIA가 저지른 비리와 비행을 조사하는 비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가 활동을 마치고 펴낸 '브루스-러빗 보고서'에 따르면 CIA는 요르단과 시리아 이란 이라크 이집트 등 중동 각국에서 반정부 쿠데타를 기획하고 실행했다. 보고서는 "미국인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중동내 만연한 반미주의는 CIA의 그릇된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케네디 변호사는 "현재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 각국의 독재자들은 1950년대 CIA가 기획한 유혈 쿠데타를 가리키며 자신의 독재정치와 탄압정책, 러시아와의 강고한 연대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며 "CIA의 유혈 쿠데타로 끔찍한 트라우마를 겪었던 이란과 시리아의 국민들은 미국의 개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자연스레 당시 악몽을 떠올린다"고 지적했다.
미국 언론들은 미 정부의 시리아 반군 지원을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이라고 보도하고 있지만, 시리아인 대다수는 현재의 내전을 송유관과 지정학을 둘러싼 또 다른 대리전이라고 보고 있다.
미 정부가 바샤르 알-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에 대한 반군의 투쟁을 지원하는 까닭에 대해 미국인들은 2011년 터진 '아랍의 봄'에서 찾고 있다. 시리아의 민주화를 돕고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케네디 변호사는 "허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시리아 내전은 2000년 '사우디와 요르단 시리아 터키를 잇는 1500㎞, 100억달러규모의 천연가스 송유관을 건설하자'는 카타르의 제안을 시리아가 거부한 데서 비롯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IS, 미국이 유린한 땅에서 자라나다
세계 최대규모의 천연가스가 매장된 보고는 사우스파르스와 노스도메(South Pars, North Dome)로, 이란과 카타르가 반분하고 있다. 최근까지 미국 주도의 경제제재로 이란은 천연가스 수출이 금지된 바 있다. 반면 카타르는 해상수송로를 통해 액화천연가스를 유럽시장에 내다팔 수 있었다. 해상수송이기 때문에 판매량에 제한이 있었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었다.
유럽연합(EU)은 천연가스 수요량의 30%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EU가 원하는 건 값싼 천연가스인 동시에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다. 러시아의 2대 가스 수입국인 터키는 특히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고 싶어한다. 고대로부터 앙숙인 관계이기도 하고, 자국 스스로가 아시아와 유럽 시장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가 되고픈 마음이 크다.
사우디의 이해관계도 만만치않다. 만약 카타르의 제안이 성사된다면 사우디의 보수 집권층인 수니파는 시아파가 장악한 시리아에서 거점을 확보할 기회를 잡게 된다. 게다가 숙적 이란의 정치경제적 파워를 봉쇄하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로,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과 동맹이기도 하다. 사우디 왕가는 이라크에서 미국이 후원한 시아파가 권력을 잡은 데 대해 자국의 지역패권을 훼손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 땅에서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 종족을 대량학살하며 대리전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카타르의 제안은 러시아의 국가이익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의 70%를 유럽에 내다파는 러시아 입장에서 카타르-터키 송유관 프로젝트는 존재론적 위협이 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카타르 제안을, 러시아를 붕괴시키려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음모로 간주한다. 중동 내 러시아 거점을 빼앗고, 러시아 경제를 목조르는 한편 유럽 에너지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2009년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카타르가 제안한 송유관 프로젝트를 거부한다"며 "동맹인 러시아의 이익을 지켜주겠다"고 선언한다. 아사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란의 가스유전에서 시리아를 거쳐 레바논의 항구에 이르는 '이슬람 송유관' 프로젝트를 건설하자는 러시아의 제안에 손을 들어준다. 이는 중동 내 수니파 국가들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불렀다. 수니파의 카타르 대신 시아파의 이란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송유관이 건설된다면 유럽 에너지 시장의 주요 공급자는 이란이 될 것이고, 중동은 물론 전 세계에서 이란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도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슬람 송유관은 이란과 시리아를 살찌울 것이고, 이들 나라가 후원하는 헤즈볼라 민병대와 하마스 과격단체가 이스라엘을 더 위협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서구 언론에서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급의 '악마'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중동에서 아주 나쁘지도 그렇다고 아주 훌륭하지도 않은 그저그런 독재자로 평가받던 아사드는 일약 1급수배범에 준하는 악당이 됐다.
케네디 변호사는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탐사보도전문가 세이모어 허쉬와 로버트 패리의 아사드 평가를 곁들인다. 허쉬에 따르면 시리아는 매주 수요일 메카에서 국민들을 참수하는 사우디와 다르다. 패리 역시 "중동 지도자들이 완전 무결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고문과 대량 살상, 시민자유 억압, 테러리즘 지원 등을 자행하는 사우디와 아사드의 시리아는 전혀 다르다"고 평가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을 핑계삼아 카타르-터키 송유관을 염원하는 수니파 국가들은 시리아 정부를 전복하기로 결의한다. 이들 나라는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을 불러 "모든 비용을 댈 터이니 시리아의 아사드 정부를 끝장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화답한 케리 장관은 플로리다주 공화당 하원의원이자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일리애나 로스 레티넌에게 "아사드를 축출하는 데 쓰이는 모든 비용을 대겠다는 아랍 나라들의 요청을 존중해달라"고 부탁한다. 로스 레티넌 의원은 공화당의 의견을 규합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아랍의 봄'으로 현혹시키지만 본질은 자원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송유관 재벌들의 용병으로 싸우다 죽을 수 있는 전쟁을 승인하는 데 머뭇거렸다. 오바마는 시리아에 지상군을 투입하고 아사드에 투쟁하는 온건한 반군을 키울 군자금 규모를 더욱 늘리라는 공화당의 빗발치는 주장을 요리조리 피해다녔다. 그러나 오바마는 결국 2011년 말 공화당과 수니파 중동국가들의 거대한 압력에 굴복하고 만다.
이후 시리아에서 벌어진 상황은 도발과 과잉대응의 참혹한 내전이다. 정부군과 반군 모두 현재까지도 혼란과 죽음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시리아의 온건 국민들은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지 않고 탈출하고 있다. 러시아가 지원하는 정부군이나 사악한 지하디즘 수니파 사이에 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케네디 변호사는 "미국이나 러시아가 제공하는 좋은 나라 만들기의 청사진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리아 국민을 비난하지 말아달라"며 "송유관 때문에 죽고싶은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1949년부터 천연가스 송유관을 둘러싼 시리아 내전은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시리아 국민들의 염원과 전혀 상관 없는 이 참혹한 전쟁은 도대체 언제쯤 끝이 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