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가 추천하는 오늘의 책 | 비밀이야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

2016-12-23 10:59:34 게재
박현주 지음 / 이야기꽃 / 1만1000원

비 오는 오후, 어린 남매 집안에 '갇혀' 있다. 학원 수업도 없는 날인가 보다. 둘은 무엇을 하고 노는가? 동생은 텔레비전, 누나는 스마트폰. 어느 집에서나 익숙한 풍경이다. 동생은 문득 침묵이 무료했나 보다. "누나! 내 친구네 강아지 되게 귀엽더라. 우리도 강아지 키우면 좋겠다." 누나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짧게 대답한다. "안 돼." "왜?" "엄마가 안 된댔어. 똥 싸고, 털 빠지고, 짖는다고." "그럼 늑대는 어때?" "늑대는 밤마다 울잖아. 시끄럽고 무서워." "그럼 하마는?" "하마는 물에 살아. 우리 집이 어떻게 되겠니!" …

도통 현실적이지 않은 동생의 질문은 진지한 욕구의 표현은 아닌 듯하다. 티브이에 나오는 동물의 이름을 그때그때 주워 섬길 뿐.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누나의 대답 또한 그닥 성실해 보이지 않는다. 겉돌던 대화는 캥거루와 기린을 거쳐 파탄이 난다. "그럼 누나, 공룡은 어때?" "이 바보야! 공룡은 멸종 됐잖아!" 쾅! 누나가 동생의 머리통을 쥐어박는다. 어리석음을 꾸짖은 걸까, 성가신 질문들을 응징한 걸까?

"으아앙~! 근데 왜 때려! 안 키우면 그만이지, 왜 때리느냐고!" 동생이 울음을 터뜨리니, 누나는 퍼뜩 미안해진 모양이다. "알았어, 알았어. 미안, 미안해. 그럼 우리 이렇게 하자." "어떻게?" "우리 함께 거북이를 키워 보자." "거북이?" "응. 거북이는 조용하잖아. 아래층 할머니도 좋아하실 거야." 그제야 눈길이 마주치고 겉돌던 대화가 궤도를 찾는다. "누나, 누나. 그럼 우리 코끼리도 키우자." "코끼리?" "응. 코끼리랑 같이 목욕하면 재밌을 거야." "그래. 그럼, 치타도 키워 볼까?"…… 둘 사이에 단절의 벽이 무너지고 상상의 세계가 열린다. 둘은 함께 거북들과 모래찜질을 하고, 코끼리와 목욕놀이를 즐기며, 치타를 타고 드넓은 초원을 달린다. "또 있어. 양! 양은 어떨까?" 밤이 찾아오고 남매는 양떼의 포근한 틈새에 누워 쏟아지는 별똥별을 바라본다.

오누이는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누나, 거북이랑 코끼리랑 치타랑 양이랑 같이 사는 거 엄마가 허락해 줄까?" "아니. 허락 안 할 걸." "그럼 어떡해?" "비밀로 해야지. 엄마한테는 비밀이야." "엄마 몰래 어떻게 같이 살아?" "나도 몰라. 그건 함께 생각해 보자." 둘을 고립시켰던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은 꺼져 있고, 남매의 얼굴엔 웃음이 피어 있다.

이야기가 끝나도록 창밖엔 비 오는데, 방 안은 맑은 하늘 너른 초원 위에 흰 구름 뭉게뭉게 떠 있다. 상상놀이가 아직도 한창인 듯. 그렇게 둘 사이에 공유하는 한 세계가 생겼다. 고립된 섬과 섬이 이어졌다. 다행스런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때,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이들은 왜 즐거운 상상을, 엄마에겐 비밀에 부치기로 한 걸까? 이건 아무래도 어른들이 답해야 할 질문인 듯하다. 어른들이 아이와 함께 그림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김장성 이야기꽃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