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난 철근 합판으로 가리고, 경고스티커 떼고…

2017-11-21 10:55:05 게재

사용제한 건물에 주민거주

통제·관리 사각지대 방치

"구조전문가 진단 해달라"

포항지진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포항시 북구 장량동 일대 필로티 방식 원룸들이 안전관리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 지진 충격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내력기둥 철근이 드러났는데도 안전요원의 통제나 관리 없이 주민들이 평상시처럼 생활하고 있다. 기둥이나 보에 1m 넘는 금이 가고 붕괴위험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권고는 딴 나라 얘기다.

포항지진으로 철근이 드러난 기둥을 합판으로 가리고 기둥보강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한 포항시 북구 장량도 원룸에 안전띠만 걸려 있고 입주민들은 정상생활을 하고 있다. 사진 최세호 기자


포항시 북구 장량동에는 필로티 원룸이 1300여동이나 몰려있다. 이 중 상당수 건물이 지진 충격으로 파손됐지만 철구조물 지지대로 떠받친 응급복구만 한 채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일 오후 6시쯤 포항시 북구 장량동 E원룸에는 입주민이 슬리퍼를 신고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나왔다. 또 다른 입주민 2명은 같은 시간 직장에서 퇴근해 귀가했다. 15가구가 사는 E원룸 현관 입구에는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 명의로 '사용제한' 스티커가 16일자로 부착돼 있으나 이를 지키는 입주민은 없었다.

사용제한 스티커 상단에는 누군가가 수기로 '입주민 출입은 가능합니다(주거포함)'라고 써놓기까지 했다.

이 원룸은 지지기둥 2개가 철근이 드러날 정도로 파손됐고 현관의 대리석과 내력벽, 계단 등이 떨어지거나 균열돼 있었다. 붕괴위험이 있는 지지기둥은 몇 개의 철제 구조물로 떠받쳐 놓은 상태였고 철근이 드러난 기둥 2개는 합판으로 감싸놓았다. 한 입주민은 "주인이 시청에서 나와 사용제한 스티커를 부착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없고 지지대로 보강조치를 해서 구조적으로 문제없으니 계속 살아도 된다고 했다"며 "가로와 세로로 금이 간 벽체가 많고 철근이 노출된 기둥이 지지하는 집에서 여진이 계속되는데도 주인 말만 믿고 계속 살아야 할지, 아니면 이사를 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이 원룸 바로 옆에 있는 H원룸은 더 심각했다. H원룸은 필로티 기둥 2개가 가로와 세로로 크게 균열돼 있었지만 안전펜스나 안전띠, 지지대 등이 설치되지 않은 채 정상적인 건물처럼 사용됐다. 퇴근시간에 맞춰 평소처럼 1층 주차장 균열된 기둥 옆에 주차하는 주민도 목격됐다. 이 곳에서 500여m 떨어진 O원룸도 지지 기둥과 상부 2층 주택 사이의 벽체 일부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필로티 기둥을 보강하기 위해 철제 구조물 몇 개가 건물을 지지하고 있었다. O원룸 주인은 "지진발생 직후 포항시에서 나와 육안으로 보고 사용제한 스티커를 부착했으나 구조진단을 하지 않은 결과를 무조건 따를 수가 없어 떼어 버렸다"며 "외형을 보고 판단할 게 아니라 구조전문가가 나와서 안전성 여부를 정확하게 판정해줘야 입주자와 건물주 모두 불안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사후 대책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포항지진 안전진단에 참여하고 있는 백태순 구조기술사는 "1차 지진으로 한번 충격이나 손상을 입은 건물은 추가 여진이 계속될 경우 붕괴 위험이 높아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입주민과 건물주들이 피해를 숨길 게 아니라 재난당국에 신고해 전문가의 진단을 받은 후 사용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포항시 재난안전대책본부는 20일까지 구조기술사 등 422명을 투입해 733개의 건물의 안전성여부를 점검했다. 이 결과 630개는 사용가능하고 104개는 사용제한으로 판정해 2단계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또 위험건물은 8개, 점검불가는 11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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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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