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초의회선거구, 정치권 반대로 '몸살'
자치구·구의회·정당 등 의견수렴 기관 80% 반대
15일 회의, 반대 진술 위해 참여 신청한 곳 29곳
시민단체 "촛불 후 첫번째 정치개혁, 후퇴 안돼"
서울시 기초의회선거구 획정이 정치권의 거센 저항에 진통을 겪고 있다. 4인선거구를 확대하려는 서울시획정위 안을 기존 정치권 80%가 반대하면서 현행 2인선거구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는 기초의회선거구획정위원회 회의를 수차례 연기한 끝에 15일로 정했다고 9일 밝혔다. 당초 의견수렴 마감일은 지난달 12일이었지만 반대 의견이 쇄도하면서 획정위는 회의 일정을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도 정상적인 획정안 논의는 불가능할 전망이다. 수십개 기관이 반대 주장을 위한 현장 진술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서울시 담당 부서 직원들은 4인선거구를 대폭 확대하는 획정위 안이 발표된 이후 정치권의 항의 공세에 시달렸다. 의견 수렴 대상 기관 중 서면이나 전화로 반대 의사를 전한 곳만 80%에 달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획정위는 획정안을 마련한 뒤 25개 자치구와 자치구의회, 국회에 의석을 하나 이상 갖고 있는 모든 정당(7개) 등 52개 기관에 전달한 뒤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정치권은 서면 반대도 모자라 무더기로 현장 진술을 신청했다. 52곳 중 29개 기관, 112명이 15일 회의에서 반대 진술을 하겠다고 신청했다.
획정위 관계자는 "어렵게 회의가 잡혔는데 회의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1기관당 7분으로 진술 시간을 제한했지만 이것만 3시간 30분이 걸리고 이마저도 정확히 끝난다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4인선거구를 반대하는 핵심 논리는 비효율성과 비대표성이다. 선거구가 확대되면 선거 비용이 많이 들고 지역이 광범위해져서 주민 대표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의원과 지역구가 같아져 역할이 중복된다는 것도 이유로 거론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기존 정치권이 이처럼 극렬한 반대에 나서는 이유는 밥그릇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대 양당 중심 기성 정치인들은 2인선거구제 유지를 강력히 원한다. 2인선거구제로 치러진 2014년, 서울시 기초의회 선거에서 거대 양당 후보가 아닌 구의원 당선자는 무소속 3명(강북구의회 1명, 금천구의회 1명, 성동구의회 1명), 노동당 1명(구로구의회) 등 4명 뿐니었다. 419명 자치구의원 중 4명을 빼고 전체 당선자의 99.04%가 거대 양당 소속이었다.
서울시와 서울시기초의회선거구획정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반발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 일각에서는 너무 부담이 크다며 획정위가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을 제외하고 반대하는 데 시의회 통과가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서울시 기초의회선거구획정은 조례를 바꿔야 가능하다. 결국 시의원들의 손에 달렸다는 말이 된다. 획정위가 원안을 고집하면 시의회가 부결할 수 있다. 획정위 안을 시의회가 채택하지 않으면 논의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그 경우 현재 선거구대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의회도 표결까지 가는 상황은 부담스러워 한다.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로선 4인선거구를 대폭 확대하는 획정위 원안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전 2인선거구 로 돌아가기도 어렵다. 선거구획정을 독립적 위원회인 획정위에 맡긴 것은 의회가 독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공직선거법 제24조는 '시도의회가 자치구·시·군의원지역구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는 때에는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 획정안을 존중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획정위가 애초 취지를 살리고 의회가 받을 수 없다고 맞서면 중앙선관위가 개입한다. 비숫한 상황이 연출된 2014년에는 국회가 공직선거법상 부칙을 제정하고 선관위가 관리규칙을 정해서 최소한의 선거구 조정을 한 뒤 선거를 치렀다.
획정위 관계자는 "인구 비례 기준. 표의 등가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고 각계 의견, 시민 공청회까지 모두 거쳐서 만든 안인 만큼 원안이 최대한 반영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서울시 기초의회선거구 획정은 촛불혁명 이후 첫 정치제도 개혁 시도"라며 "정치권이 민심을 받들고 개혁에 나설 의지가 과연 있는지를 시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