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임금피크제를 바꾸자│①앞다퉈 도입한 금융권 실태

5년차 가면 월120만원 … "기초생활수급자 수준"

2018-05-02 12:17:36 게재

제도 첫 도입한 신용보증기금 … '정년보다 연장근무'라는 당초 취지 어긋나

신용보증기금은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당시 정년 퇴직이 만58세였는데 정년을 만60세로 연장하면서 임금을 줄인 것이다. 정년을 늘렸기 때문에 임금이 줄어도 직원들의 불만은 크지 않았다.


만 55세에 임금피크에 들어가면 기존 급여의 85%를 받았고 2년차에는 70%, 3년차에는 55%를 받았다. 하지만 당초 정년이었던 시점을 지나서 4년차에 들어가면 임금지급률은 25%로 급감했고 마지막 5년차에는 15%만 받고 근무했다. 임피제 시행 전이었다면 이미 퇴직했을 나이에 근무를 할 수 있었다는 점 때문에 적은 월급을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3년 만60세를 정년으로 법제화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박근혜 정부는 정년 연장을 빌미로 공공기관과 기업들에 대해 임금피크제 시행을 압박했다. 금융권에서는 2015년 논의가 본격화됐고 2016년 대부분 기관들이 시행에 들어갔다.

다른 기관들은 임피제를 시행해도 기간이 주로 3~4년이었지만 신보는 5년으로 더 길었다. 특히 근무 마지막 연도에 15%를 받는 곳은 신보가 유일하다.

직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임피제 5년차에 받는 월급은 세전 150만원, 세후 120만원 정도다. 신보의 한 직원은 "기초생활수급자 수준에 불과한 임금을 받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 신보는 노사간 협상을 통해 임피제 기간을 3년으로 단계적 단축을 진행하고 있다. 3년간 임금지급률은 150%다. 5년으로 환산하면 그동안 250%만 받던 것에서 350%를 받는 것으로 지급률은 올라갔다.

하지만 3년이라는 임피제 기간만 놓고보면 임금의 절반 가량만 받는 것이다.

신보가 당초 임피제를 도입했던 취지는 정년보다 오래 근무하면서 임금을 덜 받는 구조다. 정년이 2년 늘어났다면 임피제 기간을 만57세부터 만62세로 연장해야 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임피제 기간만 줄였다.

임피제 대상 향후 크게 증가 = 신보는 임피제 시행 기간이 15년 가량 지나면서 대상 인원이 전 직원의 10% 가량을 차지할만큼 많아졌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전체 직원 2300여명 중 230여명이 대상이다.

이후 임피제를 도입한 기관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임피제 대상이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2022년이 되면 임피제 대상은 산업은행의 경우 18.2%, 기업은행 12.3%, 한국은행 11.5%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시중 금융회사들은 임피제 기간 동안의 임금보다 많은 금액의 명예퇴직금을 주기 때문에 명퇴자가 많은 반면 금융 공공기관들의 경우 명퇴금이 적어 그만두는 직원이 거의 없다. 갈수록 임피제 대상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각각 2010년과 2014년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자가 없다. 기업은행도 2015년이 마지막이다.

임피제에 들어간 한 금융 공공기관의 직원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직장에 남아있다"며 "현재의 임피제는 직원들의 임금을 깎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직장에는 오히려 역효과"라고 말했다.

"배신감 크고 조직 내 갈등 불씨" = 이수경씨는 지난해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만족도와 관련한 박사학위 논문에서 "공기업의 특성상, 개인역량을 발휘하거나 진취적인 업무 경향이 아닌 환경에서 오래 근무한 고령근무자들은 오랜 경력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 직장인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재취업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기업들은 양질의 노동력 부족 현상을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임피제를 비용구조 개선과 인사적체의 해소 방안으로 도입하고 있다"며 "임피제 대상 근로자들은 제도에 대한 불만과 조직에 대한 배신감을 많이 갖고 있으며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는 적합한 직무 부재와 결합해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보의 경우 오랜 기간 임피제를 시행하면서 임피제 직원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업무를 개발했다. 1억원 이하 소액대출 보증과 관련한 현장 확인 업무, 기업체 재무제표 상시 업데이트, 중소기업 경영컨설팅 등으로 직원들의 불만을 줄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임피제를 시행한 지 얼마 안된 기관들은 직원들 간 불화조짐을 보이는 등 조직 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공직 기능을 수행하는 금융권의 한 기관 관계자는 "임피제에 들어간 직원들에게 업무목표를 독려하기 어렵고 임피제 대상이 늘면 기관의 업무효율성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양동훈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등은 '임금피크제 기업이 기업의 인건비와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연구에 관한 연구'에서 "근로자의 동의와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임피제는 타당성 없는 임금삭감에 불과할 수 있다"며 "타당성 없는 임금삭감은 근로자의 근로의욕 감소와 동기부여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임피제 대상자에게 전과 다른 부수적인 업무를 부여해왔는데, 전문성과 경험을 활용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라며 "기업의 상황과 환경에 맞춘 제도의 개발과 이에 맞는 인사관리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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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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