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산분리 완화 '행정부에 입법권 백지위임'

2018-09-18 11:41:53 게재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 '위헌 논란' 거세질 듯 … 민주당, 당론채택은 실패

여야가 20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사실상 입법권을 행정부에 백지위임한 것이어서 위헌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17일 더불어민주당은 정책의총을 열고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당론으로 채택하는 데는 실패했다. 원내지도부의 책임 아래 20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한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은 높아졌다.

여야가 합의한 대로 법안이 마련되면 은행 지분을 34%까지 보유할 수 있는 비금융주력자(기업)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은 금융위원회가 시행령을 통해 마련하게 된다.

하지만 법률조항에서 명시한 자격 요건을 보면 '경제력 집중 억제'와 '정보통신업 영위 회사의 자산 비중' 등이다. 이는 시행령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법률조항만 놓고 볼 때 시행령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규정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헌법의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헌법재판소에서 포괄위임금지원칙 위반으로 위헌을 선고한 사건들을 보면 이번 건과 유사하다.

헌재는 2016년 6월 공직선거법의 '언론인의 선거운동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다. 언론인에 대한 정의 자체가 포괄적이고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헌재는 "금지조항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언론인'이라고만 해서 '언론인'이라는 단어 외에 대통령령에서 정할 내용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았다"며 "방송 신문 뉴스 통신 등과 같이 다양한 언론매체 중에서 어느 범위에 한정될지, 어떤 업무에 어느 정도 관여하는 자까지 언론인에 포함될 것인지 등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은산분리 완화 법률안에는 '정보통신업 영위 회사의 자산 비중과 관련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출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업 영위 회사를 어떻게 볼 것인지, 자산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보다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헌재가 2016년 11월 선고한 사건도 마찬가지다. 헌재는 식품위생법에 '식품접객영업자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자는 영업의 위생관리와 질서유지, 국민의 보건위생 증진을 위해 총리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지켜야 한다'고 명시한 조항에 대해 위헌을 선고했다.

식품접객업자를 제외한 어떠한 영업자를 시행령에서 수범자로 규정할 지에 대해 아무런 기준을 정하지 않았고 '영업의 위생관리와 국민의 보건위생 증진'이라는 내용이 추상적인 공익의 전체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행위기준을 제공해주지 못한다는 게 이유였다.

은산분리 완화 법률안과 비교하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는 비금융주력자(기업)의 요건과 관련해 '경제력집중의 억제'라고 명시한 것 역시 '추상적인 공익'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7일 민주당 의총이 열리는 장소 앞에서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은산분리 규제완화 반대 시위가 열렸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그동안 정부·여당이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명분으로 제시했던 재벌대기업은 제외하고 ICT기업에 한정하겠다는 내용도 사라진 채, 사실상 모든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며 "내용의 문제점은 물론이고 과정에서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여실하게 드러낸, 최소한의 명분도 상실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 시도는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추진되는 은산분리 완화는 재벌대기업에 모든 자본이 집중되는 심각한 경제적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으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금융소비자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민주당 의총에서는 격론에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박용진 우상호 우원식 제윤경 의원 등이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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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완화법률, 헌법 위반"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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